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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1. 2020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추석 당일이기에 어떤 브런치 글을 남겨놓을까 고민하다가 2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CES박람회를 보고 쓴 기고글을 올려야겠다 생각했다. 유누스가 가진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선언적인 구호가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세심하게 다듬어가는 중대한 시기에 우리는 놓여져 있다.


[기고]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


가난없는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엘리트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고국으로 귀국하여 경제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악성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방글라데시 국민을 알게 되었고 그를 돕기 위해, 상담을 하던 중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시달리고 있는 악성채무는 단돈 28달러(한화 약 3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에서 배운 거시적 경제학, 그리고 수없이 제시했던 경제학 전문이론은 여기서 무참히 깨지고 만다. 그러한 경제이론은 과연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기에 단돈 28달러를 갚지 못해 빚이 빚을 낳고 있는 가난한 국민 하나를 구하지 못하는가?


그는 과감히 교수라는 자리를 벗어던지고 현장으로 나가 악성채무를 갚아나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무신용 소액대출을 통해 '대출의 기회조차 없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서 그들에게 다시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경제학 교수를 벗어던지고 무신용 소액대출에 집중하는 무함마드 유누스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보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괜히 가난하게 되었겠나? 돈을 갚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 리스크는 그라민은행이 모두 지게 되어 파산할 것이다.' 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빚나갔다. 상환률은 96%에 달하며 방글라데시의 전체에 그라민은행은 퍼져나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방글라데시의 국민들에게 다시금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2006년 그라민은행과 무함마드 유뉴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이 그라민은행은 사회적기업으로 불린다.


2010년 군을 제대하고 대현동 한 공부방에서 무료교육봉사활동을 하던 나는 어느 날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게 된다. 공부방의 공간에 비해 활용하는 아이들이 너무 적어 비효율적이어서, 효율적으로 공간을 허물고 다시금 주민도서관을 짓겠으니 더 이상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반문하였다. "비효율적인 건 알겠다. 근데 그 동안 저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공부하냐? 대부분 조손가정 아이들이다." 나의 질문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답변이 지금까지 내가 사회적기업을 하게 된 이유였다. "모르겠어요. 알아서 다른데로 찾아가겠죠?" 돌아오는 길에 곱십어보다가 길바닥에서 욕을 하였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비효율, 효율을 따지는 것도 그런데.. 기회가 불평등하잖아. 돈 없으면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면 된다는거야?"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때, 내가 국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았다. 그건 분명 공공재였다. 국립대학교의 유휴시간을 활용하여 지역사회 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무료학교, 진로체험처로 개방시키자! 그것이 내가 지금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기회와 정보의 평등이 최소한 확보하여 사회에 나가 꿀리는 것 없이 실컷 실력대로 경쟁해본다." 그 뒤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 창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십년째 대표(사무총장)로 직업적인 길을 걷고 있다.


나에게 항상 '공학'은 불편한 존재였다.

분명히 입학할때는 성적 우수 상위권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내가 사회적기업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과연 나에게 맞는 옷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기계공학과 강보영 교수님께 자문을 구할 기회가 생겨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거리를 꺼내놓았다. 자세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교수님께서 웃으면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보기엔 네가 가장 공학적인 정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구글이나 네이버를 생각해보자. 정보의 바다 속에서 검색을 할 때마다 사용료를 내야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 되겠지? 알 기회가 없으니 정보를 획득하지 못하고 항상 그 굴레 속에서 살게 되겠지. 하지만, 공학과 기술의 극대화는 정보의 평등,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실력으로 맞붙어볼 수 있게 되는거야. 일정수준의 문명의 보편화가 이루어지지. 이런 관점에서 볼 때는 네가 하는 교육 사회적기업도 비슷한 비젼을 가지고 있지 않아? 너는 공학을 하고 있어."


그 뒤부터는 나에게 '공학'이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자랑이 되어갔다. 몇년이 지나 다포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몰려왔다. 그리고 AI, 코딩 등 단순한 암기식 인재가 아닌 문제해결형 인재를 원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CES2019라는 기술과 공학의 집합체인 박람회에 참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실리콘밸리를 가서 벤쳐창업자들의 도전과 열정을 엿보게 되었다. 분명히 세계는 바뀌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정보와 기회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손쉽게 얻게 되었다. 물론 노력과 자발적인 열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기술과 공학의 발전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도 누구나 쉽게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접할 수 있으며 더이상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이제는 그것이 더이상의 고뇌가 아닌 동등한 상태에서 경쟁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노력과 열정으로 역전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차별이 아닌 다름으로, 불편하지만 극복가능한 정도로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처음 명제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가난없는 세상은 과연 가능한가. 내가 가지는 생각은 '조건부로 가능하다.'

가난과 장애가 이전까지는 기회와 정보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공학과 기술의 점진적 발전으로 해소되고 동일한 출발선 상에서 시작하여 시장경제 속에서 실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실력있고 준비된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


다만, 여기서만 멈추어버린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단순한 역전기회(Switch)의 시대라고 4차 산업혁명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이 속에서 '인간다움'과 '공동체성'을 짚어보고 순간의 경쟁에서 뒤쳐져 버린 빈(貧)자에 대한 관용과 다시금 경쟁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지는 환경시스템이 제시된다면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영원히 가난에서 고통밖지 않은 기회가 있는 세상. 즉, 가난없는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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