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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2. 2020

1번째 희망이냐, 101번째 절망이냐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본 사회문제

열두번째 에피소드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작은 공부모임으로 시작하여 NGO단체를 거쳐 사회적기업을 성장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인증제로 하고 있으며 해당부처는 고용노동부이다. 부처에서 허용하는 법인형태를 갖춘 곳에서 인증을 신청하고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으면 된다. 2013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정식적으로 지정을 받은 것이고 2010년~2012년까지 약 3년 간은 NGO단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그 기간 동안 참 많은 에피소드들이 지나갔고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풀어내고 싶은 에피소드는 H와의 지금까지의 인연이다. 참고로 H는 내가 본 누구보다 똑똑하며 가능성이 많은 아이다. 단연코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단체명을 '미담장학회'로 지었다. 소셜미션은 교육기회의 평등, 그리고 최종목표는 해산.! '장학회'라는 타이틀을 쓴 것은 현금만으로 장학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서비스로 주는 장학금이었다. 점점 단체가 커져가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학교 후배에게 사정해서 값싸게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홈페이지 게시판에 H의 글이 적혀있었다. 사실, 우리가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잘 관리를 못해서 게시글을 2주 뒤에나 확인했다. 미안했다. 장문의 사연이 적혀있던 H의 글 요지는 이랬다. 자신이 국제고를 다니는데 고고학에 관심이 많고 인도에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적은 작가에게 방학동안 인턴(견습생)을 할 기회가 생겼지만 그 곳에선 견습생 기회를 주는 것이지 일체 비용 지원은 없어 장학금을 받을 곳을 찾고있단 것이었다. 우리도 '미담장학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니 검색 키워드에 걸린 모양이었다. 백여곳을 두드렸는데 냉담한 반응이 왔고 만약에 장학금이 어렵다면 돈을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인도에 갔다와서 자신이 공모전을 나가서 상금으로 그 돈을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멍하니 그 게시글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 패기에 놀랐다. 우선, 국제고에 연락을 해서 그 아이에 대해서 사실확인을 해보았고 직접 찾아가 만나봤다. 직접 만난 H는 엄청난 총기가 엿보이는 아이였다. '사기는 아니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가 '장학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었지만 정식적으로 장학재단이 아니었고 초기 단계라서 법인통장에는 천만원 정도의 보유금 밖에 없었다. 비행기값과 체류비를 계산해보니 약 이백만원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단체의 1/5을 H에게 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사무총장으로 행정 전반을 관리하였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고 그 사이에 나름의 전략을 수립했다. "H라는 아이가 있는데 만나보고 왔다. 총명하고 대단하더라. 사연이 있어 우리가 장학금 형식으로 돈을 지출할 수 있는지 안건을 검토하는데 현재 우리 단체 현금보유 자산의 1/5가량을 줘야하더라." 내가 잠시 말을 멈추자, 이사회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5이 투자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나는 설득의 전략을 펼쳤다. "안다. 이게 말이 안된다는 것. 하지만, 하면 좋겠다."


"H가 백여군데의 장학재단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장학금 집행시기 등이 맞지 않아 외면했다고 하더라. 단체 운영 입장에서 일부 이해가 가더라.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되지 않겠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선택을 하자. H에게 101번째 절망을 줄지, 아니면 1번째 희망을 줄지.!"


그리고 우리는 인도의 '오래된 미래' 작가인 헬레나 노브레리 호지에게 H를 보냈다. 그 무렵 나는 방학 동안에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으며 H를 이끈 그 감정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H가 돌아와서 나를 다시 만났다. "총장님. 돈을 언제까지 어떻게 갚으면 되겠나요?"


이사회에서 우리는 돈을 어떻게 받을지까지 논의를 했고 내가 말했다. "H야. 그 돈 우리한테 갚지 말고 사회에 갚아나가. 그러면 된다."


H는 그 다음해 Y대를 학과 수석으로 입학했고 수석 졸업했으며, 현재 S대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H와는 우리가 파트너로 함께 일했던 MS(microsoft) 아시아태평양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로 가서 한국에서 NGO파트너십으로 이루어졌던 모델링과 사례발표를 함께 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H는 자신이 배운 것들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좋은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H와 추석연휴에 연락을 주고 받았다. 곧 서울에서 보고 밥을 먹기로 했다. 이제는 서로 어른이 되어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다. 나는 H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은 리더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가난과 어려움, 그리고 남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있는 리더가 보고싶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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