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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2. 2020

사회양극화의 민낯과 마주하다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본 사회문제

열세번째 에피소드다.


현타가 온다는 느낌을 알까? 진정 현타를 맞본다면 몸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음을 체험할 수 있다. 나는 브런치 글을 시작하면서 첫 에피소드가 '집이 없다는 것'이였다. 그만큼 유년기가 순탄치 않았다. 다만, 나는 우리 부모님과 같이 가난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었으며 아낌없이 나눠주려는 부모님 덕분에 부족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게 살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난을 이야기하는 건 가끔은 부당할 수 있다. 미싱공장에서 아침 해뜰때 출근하여 달을 보고 퇴근한 건 우리 어머니였고 사업의 실패로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이 악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건 우리 아버지였다. 나는 그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겁쟁이였고 그저 자격지심만 있는 열등생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고 '욱'성질을 해소하고자 제3섹터의 길로 우연치 않게 빠졌다. 그 전까지는 내가 가장 불행하고 세상의 불공평함으로 가장 피해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 생각했다.


사회적기업 창업 후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어 이익잉여금으로 '장학금'을 줄 정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년에 두번정도 '미담장학생'이라는 정기 장학금 지출을 위한 전국 공모를 실시했다. 최소 우리도 기준과 원칙을 갖춰야하기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Y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우리가 제공하는 교육을 3년 간 충실히 받는 아이였다. 구김살없이 다니기에 잘 몰랐지만 알고보니 한부모 가정이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내 모교 청소근로자로 근무하시며 대학원생 형과 Y를 키워내고 계셨다. 그 당시 내 모교는 청소근로자 파견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나도 그 시위에 지지서명을 했었다. 파견직은 노동의 유연화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비겁한 변명이라 생각했다. 노사문제에서 회피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며 노동개혁에서 파견법이라는 부분은 신중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그 소식을 들은 나는 Y에게 '미담장학생'을 선발하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앞서 말한 기준과 원칙이 있기에 Y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제출하라고 했다. 난 Y가 차상위계층은 될 줄 알았다. Y가 귀가 후에 자신의 어머님께 이야기를 했나보다. 그 당시 나는 장학생 신청서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국에서 공모를 하다보니 정말 산더미가 같이 쌓인 장학생 신청서류를 일일히 다 읽어본다고 꼬박 밤을 샜다. 그날 밤도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신청서류를 보고 있었다.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 전화 한통이 울렸다.


내가 보기보단 경계심이 많기에 밤 열한시에 오는 모르는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왠지 그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첫 말을 뗐다. "저.. 선생님이시죠? Y 엄마입니다." 그리고 시작된 어머님의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용인 즉슨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차상위계층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Y가 장학금을 받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안된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두가지 생각에 사로 잡혀 소위 현타가 왔다. 첫째는 내가 도대체 뭐라고 Y의 어머님께 밤늦게 용기를 내 전화 걸어 덜 가난하다고 말하게 할 권리가 있는가. 둘째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사회양극화는 가늠할 수조차 없이 큰 것인가.


이 두가지 때문에 현타가 와서 정말 삽십여분 동안 아무 생각없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첫째를 가능하게 했던 건 엄마로서의 용기일 것이다. 아들을 위해 용기낼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다. 둘째는 내가 더 사회문제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빚이 빚을 낳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기간 중 부산에서 "돈없고 빽없고 가진 것 없다고 해도 손해보지 않는 나라! 혹시라도 실수로 실패한 사람에게도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자 아버지를 만나지 않더라도 나라에서 보장하는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노무현처럼 변호사도 될 수 있고 사장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연설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나는 아마 시민활동가로 불려도 쪽팔리지 않게 되었다.

부당함에 대한 분노! 불의를 못 참는 성격!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와 맞서는 것이다.!


Y는 다행히도 장학생 선발 기준에 본회 교육과정을 3년 이상 들은 자에게는 '장학생' 선발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조항을 발견하고 적용하여 그해 '미담장학생'이 된다. 장학생선발 최종심의위원회를 열어 명단을 확정짓고 나는 바로 Y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Y가 장학생으로 최종 선발되었습니다."

전화 너머 들려오던 기쁨의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커피 한잔의 여유

국회와 사회적기업, 스타트업CEO, 변호사(로스쿨준비생)


소개      

김인호입니다. 20대에는 사회적기업가로 살았습니다. 30대에는 국회비서관, 스타트업CEO, 변호사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제 생각을 펼치며 사회를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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