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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23. 2022

한탕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다양성의 가치가 실종된 공동체는 근원적 혁신 동력이 상실된다

170번째 에피소드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지인과 심도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서 떠나 미국의 교육을 받으며 느낀 점은 '한국 사회가 다소 답답하다.'는 평가였다. 그 지인 외에도 미국에서 유학한 다른 동료들의 의견도 대부분 비슷하단 것이 냉정한 현실이었다. '남이 떡이 더 커보이니, 미국이 선진국이고 한국의 부정적인 면만 보이는 것 아니야?'라고 시니컬하게 반문해보아도 다양성의 가치가 실종된 한국이란 건 변함없는 평가였다. 사실 나조차도 그렇게 반문하였지만 그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나도 한국 사회가 답답하다.


고려시대 광종은 과거제도를 통해 엄선된 인재 등용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유교 중심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제도는 유일한 인재 등용문이 되었고 양반과 서민, 그리고 천민 등의 계급사회 속에서 유일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통로로 유지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교육 정책이 수립됨에 따라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이 주요 대학입시의 평가기준으로 자리잡았고 로스쿨 등 입학시험 또한 다른 사회경험보다 절대적 평가요소로 취급받고 있다. 온 세상이 시험공화국인 '대한민국'이다. 한탕 또는 한방만이 살길을 외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노량진 등으로 우리 모두가 빠져들고 있다. 시험의 순간에 우린 모두 삶의 시계를 맞추고 살고 있다.


예전에 대학 입학사정관 제도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가 상당히 곤혹을 당한 적이 있다. 그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불공정과 불공평'한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지만 가능성의 축소를 자행하는 건 미래지향적이지도 못한 태도라고 확신한다. 정시 100%를 주장하는 이들과는 꼭 논쟁하는 편이다. 부모찬스, 부정청탁 등을 활용하는 이를 단죄해야 하는 것이지 '가능성의 사다리'를 완전히 즈려 밟을 필요는 없는 없다. 시험이란 '기회의 사다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가능성의 사다리'를 통해 우린 다양성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내가 로스쿨 제도에 관해 준비를 해보자고 했던 건 상당히 우스럽게도 미국드라마인 '웨스트윙' 때문이었다. 제드바틀렛 대통령은 맨도자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보고 고민한다. 라틴계였던 후보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미국 정통의 대법관 이미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좌관이었던 리오는 이와 같은 말을 대통령에게 전한다. "맨도자는 충분히 훌륭한 후보자이다. 경찰 생활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삶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국가의 학비 도움으로 로스쿨에 입학하였고 지역에서 변호사, 판사로 근무하며 누구보다 미국의 정신을 잘 실천해왔다." 뭔가 드라마요소인 극적인 효과가 있었겠지만 왈칵 눈물이 나왔다. 무언가를 본다는 건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논쟁은 반드시 있으며 그 속에서 합의된 더 나은 논리가 탄생된다. 한국의 로스쿨은 본연의 그 정신을 쫓고 있는지 의문이다. '음서제도'란 이름하에 고위층 자녀의 등용문으로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단죄하면 되는 것이고 어렵지만 '다양성 존중'은 '가능성의 사다리'로 반드시 두어야한다.


시험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한탕주의이다. 현재 가상자산과 주식시장으로 대변되는 재산권 영역은 더할 나위가 없다. 냉정히 꼬집어 보자면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삶의 절박함"보다는 "배팅해보고 아니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안일함"이 더 크다고 솔직히 의견을 밝힌다. 모두가 한 지점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 뿐이다.


최근 정치권 뉴스는 보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은 너무 유치해서 보질 못하겠다. 확증편향이란 말이 유튜브 현상과 더불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점점 더 심해져 '다양성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탕주의는 그 시험대를 통과한 이들에게는 성골 또는 진골을 부여해주며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기껏해야 6두품을 만드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시험, 그리고 한탕을 통해 부를 이룬 이들에게 열광하며 '다양성'을 쫓으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들을 폄하하고 그들의 인어써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철저한 배제 그리고 비난과 힐난으로 응대한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표현은 중요하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한 수 접고 그것을 순간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해보려는 시도이다. 브런치에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단일민족이란 것이 가지는 강점이 '하나의 일치된 의견'이란 건 아니다. 그것이 강점일리도 없고 혹여 그것이 강점이라고 말한다면 저기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찾아보길 바란다. 개인의 말살, 그리고 다양성의 훼손은 일시적인 모습은 응집하고 단결되어보이나 공동체의 근원적 혁신 동력은 상실되어 끝내는 무너지고 만다. 그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해왔으며 앞으로도 불변할 진리일 것이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 그것이 발현되는 다양성의 존중은 민주화 이후 개인의 정치참여란 기본골자를 이룬 것만큼이나 향후 미래성장을 결정할 중요한 핵심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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