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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16. 2022

도시가 소멸해가는 과정

지방자치 그리고 분권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이해

195번째 에피소드이다.


우선 나는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다. 수도권에서 대학원, 그리고 일부 직장생활도 해보았지만 영락없는 지방사람이다. 대학원의 경우는 1년 간은 무려 대구에서 서울까지 통학해서 다녔다. 수도권에 집도 변변한 인맥도 없던 내가 다시금 적응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 컸고, 무엇보다 피곤했다. 특별하게 원한것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지방을 가까이하고 지방을 잘 알면서 삶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 되어만 갔다. 지방자치리더십아카데미란 과정을 지인의 권유로 수강하게 되었고 오늘 마지막 날을 마치고 수료만 기다리고 있다. 사실 거의... 지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수료 기준을 맞췄지, 중간에 낙오할 뻔하였다. 내겐 큰 매력을 주지 못하는 지방자치, 그리고 분권이었다. 아카데미의 강사들의 내공과 식견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그 업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며 지방자치, 분권을 위해 헌신하신 노고는 내가 감히 평가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 그 자체로 대단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지방자치, 분권의 전제조건은 참여이다.


난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참여가 일어나게끔 하는 동기는 애향심이다. 그 애향심의 원천은 평생직장이며, 지방을 떠나지 않고 획득할 수 있는 대학 이상의 학력 수준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우선 평생직장은 우리 세대에겐 불가능하다. 정확히는 그러한 삶을 개인도 원하지 않으며 기업도 제공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담보된 사회를 마주한 현실에서 한 지역에서, 어느 시점 이후 터전을 정하고 애정을 키워간다는 건 쉽지 않다. 내 커리어, 그리고 샐러리가 중요하며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 직장은 서울이든, 외국이든, 제주도는 당장이고 갈 수 있다.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박차고 지역을 옮길 수 있다. 그렇기에 난 지방자치, 분권을 평생 연마하며 참여할 만큼의 애향심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지방을 떠나지 않고 획득할 수 있는 대학 이상의 학력 수준은 처참하다. 내 모교인 경북대학교, 그리고 부산대학교가 이미 명문대 반열에서 진작에 탈락했다는 건 서글프지만 현실이다. 그렇기에 수도권 대학을 선택하고 참여동기인 애향심은 누적될 가능성을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을 외치는 분들의 연령대는 상당히 높다 못해 어딜가든 고개 숙여 인사한다고 한참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 세대가 가졌던 영광, 그리고 애향은 내가 감히 범점할 수 없이 깊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 그곳에 앉아 많은 고민과 그리고 시간투자를 할만큼 내겐 애향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향후 수십년 간 대한민국 사회에 맞닥들여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세대 간의 갈등'인데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 갈등의 진원지가 여기에 있다. 오늘 조별과제, 그리고 개인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각각 지역화폐에 대한 명과 암,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개인 소유권 확보 이후 공유의 확산 등을 언급하였다. 나의 현란한 발표 기술, 그리고 페이퍼 작업에 어른들은 감탄하였고 칭찬이 쏟아졌지만 그 뿐이다. 나는 기술은 있지만 지역을 지켜나갈 애향심은 아카데미를 참가한 그 누구보다 약하다. 약함을 떠나 미비한 수준이다. 나 역시 내 커리어, 그리고 샐러리를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 과감히 그곳으로 터전을 옮겨 내 새로운 삶을 사는데 집중할 뿐이다.


이런 생각의 과정까지 도달하니 이것이 '도시가 소멸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부류는 사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그리 도움이 되는 인재는 아니다.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절대 추상적인 말속임에 속지 않는다. 그러니 가끔은 대승적 차원에서의 결합을 해야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단, 앞으로 도시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도시가 나보다 더한 개인주의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분권 이전에 결국 기초단계인 참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냐, 또한 그 참여를 이끌어내야하는 집단은 다수가 개인주의자들이며 추상보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원할 것이다. 그러니, 결과로서 말하는 화법에 도시는 더 익숙해져야 한다. "에이, 형님! 그냥 좀 넘어갑시다. 다 아는 사이에 뭘~"란 화법은 참여보단 혐오, 냉대와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진정한 지방자치, 분권들을 이끌어낼 동력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면 도시는 생명력은 잃고 소멸해나가는 과정에 돌입한다. '도시에 활기가 없다.'는 건 이를 두고 한 말을 표현한 것이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그리고 달라져야 한다. 도시 생명체의 생명연장의 길은 진시황처럼 터무니없이 폭압적인 강압으로 불로영생의 묘약을 찾아 떠나보내는 기약없는 추상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애향심을 갖출 수 없는 세대들을 실리와 합리로 설득하고 참여시키는 그 단계에서 출발한다. 그게 내가 바라보는 지방자치, 분권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과거의 방식은 과감히 바꾸고 잊을 건 잊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볼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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