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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2. 2020

집이 없다는 것

사회가 나에게 어둡게 다가온 첫 순간

첫 에피소드이다.


사회에 관심을 가질 만한 지식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사회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밝은 모습보다는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 채로.


부모님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해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다만, 내가 왜 부산에 살게 된지는 모른다. 충남 당진 출신인 아버지와, 전남 남원 출신인 어머니는 서울에서 만나 나를 낳고 신림동에서 살다가 무슨 연유 때문인지 갑자기 부산에 내려왔다. 나는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고 수차례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지금 내 나이대 부모님들 같이 '남사스럽다. 쓸데없는 소리마라.'라고 하며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것을 알아내려고 좋아하지도 않은 소주를 마시자고 먼저 제안하며 회유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며 대화를 중단했다.


내 기억이 날 무렵부터 우리 집은 없었다. 그나마 전세였으면 다행이었지만 사글세였다. 왜냐하면, 매월 말일마다 어머니가 주인집에 무언가를 주러 올라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집주인 어른들 만나면 인사를 크게 잘해라" 나는 이유는 몰랐지만 연말만 되면 그 잔소리는 더 심해졌다.


우리 집은 이사를 참 많이 했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제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알아 숨바꼭질에 유용한 나만의 공간을 알았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산에서 살았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다가온 공동체는 어두웠다.

최근 마을공동체라는 정겨운 단어가 나와 협동과 협업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 내가 마주한 마을공동체는 정겨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모두가 생계를 위해 조용하다. 학원갈 돈이 없어 집 주변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리고 해가 지면 모두가 모인다. 지친 얼굴을 하고 자신의 집을 채운다. 한시간 이내로 여러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부부싸움'이다.


상스러운 욕설과 물건이 날라다니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덤덤해지는 것이 무섭지만, 무덤덤해진다. 매번 빠지지 않고 부부싸움 하는 집이 오늘은 조용하면, 되레 이상하다. 오늘은 기어코 갈라설 모양인듯했다.


우리가 살던 집보다 더 높은 고지대가 개발되면서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시공사 직원들과 한창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 틈에 어머니도 끼어있었다. 궁금함에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나는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내 몸짓만한 돌이 굴러내려와 골목 한 어귀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삿대질과 고성이 오갔다.


어머니는 이 집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또 한번 이사를 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돌이 굴러 내려와 몇몇 가구가 함께 쓰는 공용화장실 일부를 파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그 공용화장실이 파손되었다는 소식에 양변기가 갖춰진 새로운 화장실이 생긴다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생존을 위해 집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공용화장실 때문에 어머니에게 미안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급식에 나온 미트볼 때문에 속이 미식거렸다. 식은 땀이 나고 오한이 나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 이불을 덮었다가 열이 나서 이불을 치우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핑 도는 것을 감수하고 수건에 물을 묻혀 머리에 대고 열이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내 속이 더부룩했다. 참을 수 없어 공용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으허..' 눈물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공용화장실은 양변기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변기를 잡고 토를 할 수 없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변기를 향해 토를 했고 오물은 내 바람과는 달리 변기 반경을 넘어서 더럽혀졌다. 처음에는 치워보려 노력했다. 솔을 들고 물을 퍼와서 그것을 마무리 지어보려고 했으나 그럴 힘이 없었다.


다시 이불로 돌아와서 오한과 몇시간을 싸웠다. 해가 지고 동네로 사람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소규모 공장에서 미싱 시다로 일했던 어머니도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해 어머니를 마주하는 것 보고 걱정스레 달려왔다. "괜찮아?" 거기서 끝났으면 참! 모자 간 정겨운 에피소드였겠으나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누구야!"


공용화장실에 널부러진 오물에 동네 사람들은 머리 끝까지 화났고 소리를 질러대며 범인을 찾았다. "엄마.. 내가 그랬어.. 미안해 ㅜㅜ 내가 치우려고 했는데 몸에 힘이 없어서.." 어머니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하고 달려나가서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손을 걷어부치고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하는 소리가 누워있는 나에게까지 들렸다. 주변에서 욕을 해대는 동네 사람들은 여전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왔다.


집은 없다는 것은 사회가 먼저 나에게 찾아와 어둡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노크도 없이 찾아와 그저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너무나 명확히 똑부러지게 자신을 설명했다.


'생각보단 삶이란 냉정하고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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