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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3. 2020

숨기고 싶은 우리 집 가는 길

숨기고 싶다면 숨기고 싶었던 사실. 그 사실을 캐내려는 자들과의 추격전

두번째 에피소드이다.


돌이 굴러내려와 생존을 위해 이사를 가야했다. 어머니가 집을 알아보기 위해 나와 함께 전봇대에 붙어있는 사글세 전단지를 수집했다. 쉬는 날이 일요일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참 부지런하게도 전단지 속 집을 보며 꼼꼼히 챙겼다.


기쁜 사실 두 가지는 드디어 산에서 내려와 땅에 살게 된 점과 2층에 살게 된 점이다. 2층에 살게 된 것이 기쁜 이유는 이렇다. 예전에 산에 살 때 주인집이 2층 집이었다. 매월 말일마다 어머니는 봉투를 들고 집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계단을 예의바르게 올라갔다. 어린 나에게 그 계단은 권위를 상징하는 것 같았고 두려움의 존재이기까지 했다. 이제 우리가 2층에 살게 된 것이다. 주인집으로 올라가던 계단이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이삿날에 너무나 신나 하루종일 방방 뛰었다. 이삿짐센터 직원 분들께 "저희가 2층에 살게 되었어요. 우와!" 이러면서 짐을 운반해주는 분들께 끝도 없는 자랑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이었다. 그때 느낀 것이 있다. '계단은 다 같은 계단이 아니구나.'


우리가 새롭게 이사 간 곳은 정원이 있는 부잣집 뒷켠에 마련되어있는 2층 단칸방이었다. 그곳을 올라가는 계단은 한명 남짓 겨우 올라가는 좁은 폭이었다. 이삿짐을 올리느라 진을 뺐다. 계단까지 가는 과정은 꽤나 험난했다. 우선 부잣집의 궁궐같은 정문을 열되 항상 조용히 열어야 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여지없이 주인집의 꾸중을 들었다. 또한 문을 열고 나면 정원을 지나야 했는데 자갈로 된 연못 주변까지 지나가야해서 발소리를 최대한 조심히 내야 했다. 또 꾸중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것을 지나 모퉁이를 도는 부분은 주인집 따님 방 창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주인집 따님과 최대한 조심히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야했다. 그러면 앞서 말한 계단이 나왔다.


내가 가졌던 계단에 대한 권위와 자부심이 깨지고나니 갑자기 부끄러움이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는 공부도 곧 잘했으며 원만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다만 학교가 끝나고 대부분 학원으로 갈 때면 나는 혼자 신속히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은 나를 굉장히 궁금해했다. 어디에 사는지..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이길 용기가 없었다.


"우리집은 안 돼. 다음에 가자."

다음에 가자고 하기를 수십번. 이제는 친구들이 나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호기심의 발동이었다. 그들을 알아채고 말싸움을 벌여봐야 "네가 다음번에는 너희집 데려가준다며~ 왜 약속 안 지키는데?" 이렇게 하면 내가 무조건 불리해질 것임을 알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골목으로 진입했다가 냅따 우리집 방향으로 다시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이 없는 시대이니 그 다음에 추가적인 연락 등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우리집은 다음번에 가자"라고 말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런 식이 되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인호 집 근처까지 가봤는데.. 정말 으리으리한 집에 산다. 없는 척 하는 건 일부러 저러는거다."


그렇다. 나는 으리으리한 집에 살았다. 하지만 그건 우리집이 아니다. 으리으리한 집 문을 열고 정원과 자갈연못을 지나 한명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단칸방이 나온다. 그것이 우리 집이다.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니다.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옷 밖에 없어서이다. 최소 깨끗이 빨아입으려고 노력했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오해를 해명할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분하고 서러웠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혼자 펑펑 울었다.


중학교로 진학하자 고약한 미행을 했던 친구들은 나에게 흥미를 잃었다. 그때까지 우리 집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 추격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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