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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4. 2020

어머니와 배추를 이고 오는 길

답답한 미싱공장에서 느낀 비정규직 처우개선의 필요성

세번째 에피소드이다.


에피소드를 나의 상당히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가치관 형성이 생긴 시점이고 그를 통해 내가 가끔 무모할지라도 사회 변화를 이끌어 보고 싶은 막연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나에게 사회문제 중 어떤 것을 바꾸고 싶냐고 묻는다. 뻔한 답일 수 있지만 내 진심은 세가지다. 사회양극화 해소, 교육 기회의 평등,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다. 이 중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십년 넘게 떨어져 살았다. 일종의 생계를 위한 잠시 가족의 해체이다. IMF로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우리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그나마 있던 모든 가구를 앗아갔다. 엄마는 소규모 공장에 미싱 시다로 일하고 있었다. 빨간딱지가 집에 붙어 있던 것을 보고 아버지, 어머니가 주저 앉아 펑펑 울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살았다. 어머니는 더욱더 밤늦게까지 일했다.


나는 집에 항상 혼자였다. 그래서 공상에 빠져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서 멋지게 여자를 구하고 사랑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렸다. 내 공상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있다면 아버지 사업실패로 인한 빚쟁이들(채권자)이었다. 나에게 항상 아버지 어딧냐고 물었다. 나는 진짜 알지 못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 때마다 나에게 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빚쟁이(채권자) 분들은 생각보다 무섭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엔 그저 애처롭고 그들도 곤란하며 하루를 조바심으로 기다리는 일반 사람들처럼 보였다. 가끔은 서로 배가 고파서 나랑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다. 그런 관계로 수년간 본 빚쟁이(채권자)분들도 있다.


어머니는 미싱공장 시다로 일했다. 초등학교 때 학기초 호구조사를 하면서 어머니 직업조사란에 직책을 '시다'라고 적어갔다. 담임선생님이 "시다가 뭐니?"라고 물어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르던데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고 시다가 시다바리(허드렛일하는 사람을 낮춰부르는 말)이란 것을 알고 미안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나를 자기가 일하는 미싱공장으로 불렀다. 김장철 배추를 집으로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근처 시장에서 배추를 실한 것으로 사놓았는데 아버지가 집에 있나, 차가 있나, 그저 두 손만 있었던 어머니는 나를 불렀다. 어머니가 나를 자신의 일터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때 내가 본 어머니의 일터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40평 남짓한 규모에 원단은 산처럼 쌓여있어 정상적인 이동이 불가능했고 미싱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끝도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에어컨도 없이 모두 선풍기에 의존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은 상상할 수 없이 오로지 라디오에 모든 집중을 하며 세상과 연결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이곳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오전8시부터 오후10시까지를 가족을 위해 일했다. 어머니는 항상 시장통에서 산 탄탄하고 질긴 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 외에는 불필요한 옷이었다. 근로계약서도 없으며, 기본급도 없는 비정규직이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다.


나는 배추를 이고 어머니는 알타리무를 손에 들고 한시간즈음 집으로 걸어왔다. 버스도 끊긴 시간,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위해 밤길을 혼자 묵묵히 걸어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사실 너무 시간이 지난 일이라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희망찬 미래의 이야기였다. 가족이 다시금 함께 살게 되는 일, 집을 장만해 내 방을 주는 일 등 소소하지만 현재 힘들지라도 미래의 우리 가족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이 함께 살게 되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줄 만큼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와 배추를 이고 오는 길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정규직들의 처우개선'


나는 그렇게 잔망스러운 놈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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