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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5. 2020

내 방이 없다는 것

나에게 결핍은 남들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친구였다

벌써 네번째 에피소드이다.


일주일에 하나씩 적으려던 내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루에 하나씩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남기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의외다. 담담하게 글을 적어내며 대부분 결핍의 이야기를 많이 적었다.


결핍에 대해 그때가 좋았다거나, 소중한 경험이었다거나 등의 낭만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결핍은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혼자 공상에 빠진 시간이 많아서 애정결핍까지도.. 사실, 그래서 좋았던 기억보다는 좋지 않았던 기억이 많다. 결핍은 그렇게 나에게 익숙해진 친구였다.


소제목으로 '나에게 결핍은 남들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친구였다.'라고 적었다. 그게 내가 결핍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좋은 친구는 아니었고 그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어느 순간까지 뗄레야 뗄 수 없이 함께 했던 신기한 친구였다. 단, 나에게 성숙함을 선사해준.. 그런 친구


청소년 남에게 가장 부끄러웠던 부분은 내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 내 방이 스무살 대학을 가며 기숙사를 배정(2인1실)받고 처음 생겼다.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처음 얻었다. 사춘기 시절 내 방이 없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18살의 남자로서 덩치는 커지고 성욕도 점점 높아지는데 그것을 해소할 길은 없었다. 어머니와 한방에서 잔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춘기 남자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며, 어머니와 난 항상 같이 있었다. 내 방을 마련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턱없이 부족함. 나는 그저 순응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까짓거 없어도 공부만 잘할 수 있다"고 했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심지어 책상도 없어 좌식 밥상을 펴서 공부했다. 그저 난 "괜찮다"고만 했다. 내 속에서는 이미 결핍으로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원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이 없다보니 어머니가 약해지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새벽에 잠이 깼다. 눈을 떴더니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나는 일어나 그녀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자는 척을 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고 아침 어머니의 목소리에 다시 잠에서 깼다. "인호야. 아침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난 그때 알았다. '부모란 참 어려운 것이구나. 울고 싶어도 마음껏 울지 못하는 그런 존재..'


단칸방이다보니 세면장은 밖에 있었다. 보일러 기름을 아끼려고, 아침마다 어머니는 물을 가스레인지에 데워서 나에게 찬물과 섞어쓰라고 했다. 세면장에 있는 비누를 가끔 하수구에서 쥐가 올라와 치즈인 줄 알고 갈아먹어놓았으면.. 참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스무살이 넘고 군대를 다녀온 후 24평형의 오래된 아파트가 생겼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이다.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내 방이 생겼다. 우리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좋아했다. 그저 나에게 내 방을 주고 싶었나 보다.


방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로움'을 만끽할 나만의 장소가 없었다는 것과 같다. 그게 사춘기에는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이더라. 솔직하게 말해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난 집 주변을 맴돌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래도 항상 집에는 꼬박꼬박 늦게라도 들어갔다. 그래서 다행이다. 내가 나중에 후회할 길로 빠지지 않아서.. 어머니도 그게 나에게 가장 고맙다고 했다. 항상 주어진 조건에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공부를 잘 해내주어서 고맙다고.. 나에게 성숙이 좀 더 가까이왔다.


내 방이 없어서 어머니랑 스무살 전까지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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