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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7. 2020

아버지의 삶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어서 잘 몰랐을 뿐이다

벌써 다섯번째 에피소드이다.


대체로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많이 쓴 것 같아 오늘은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사실, 지금은 아버지와는 둘도 없는 친구다. 권위적이지 않은 아버지였기에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와 친해진 건 이십대 중반 이후였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봉사를 하던 나를 걱정스럽게 보던 어머니와는 달리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일도 할려면 사업수완이 있어야지" 나보고 "넌 너무 착해 빠져서 문제다. 돈없으면 어떻게 좋은 일 하느냐, 돈은 벌거나 구해오면 된다." 그 전까지 아버지의 삶에 관심없어 알지 못했지만, 장학재단 비상근 이사(봉사직)로 나와 비슷한 일을 겸업하고 있었다. 이제는 좋은 친구이자, 자문 사업파트너로 서른두살까지 잘 지내오고 있다.


하지만, 내 청소년 때 기억에서 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져있다. IMF시기 때 사업이 여러번 잘 되지 않아 빨간 딱지가 붙은 우리 집을 보며 다 함께 펑펑 울었고 그 길로 아버지는 잠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두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첫째는 빚쟁이(채권자) 때문에. 내가 제일 싫었던 건 주말마다 집전화로 걸려와 "아버지 어디있니?" 나는 정말 어디있는지 모르는데, "옆에 있지. 빨리 바꿔"라고 물어보는데 정말 로이로제가 걸렸다. 둘째는 가족을 위해 다음 방법의 준비 때문에. 사실 아버지는 공부로서 반전을 꾀했다. 사업을 하다가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가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날도 어머니와 돈 때문에 싸우고 나는 싸움에서 절실히 벗어나고 싶었지만, 단칸방이라 그 싸우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을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아버지가 한마디했다.


"공부해서 재기할게"

그 뒤 아버지는 정말 재기했다. 지금은 부산 사립전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산다.


내 청소년 때 아버지가 두번 등장한다. 모두 나의 철없는 행동 때문이다.


첫째는 간부 수련회 신발사건이다. 앞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얼핏 나오겠지만 동네에서 나는 전설적인 우등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난 항상 전교 1,2등을 다투며 지냈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건 절대 없었고 그저 지는 것이 싫어서 했다. 공부를 누구한테 진다면 나는 모든 것이 진다고 생각했고 암기과목을 외우지 못하면 머리를 벽에 박는 등 자학적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며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전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나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오로지 교과서만으로 소위 학교에서 공부로서 인정받았고 나는 그저 내 가정형편이 불만이었다. 게임도 곧잘하고, 리더십도 있어 인기가 많았던 나는 당연스레 반장을 했고 모두가 나를 동경의 시선으로 보았다. 영재고, 과학고를 준비하는 친구도 있었고 잠시 살펴보고 바로 접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러는 사이 나는 열등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그것을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잠시 돌렸다. 그 무렵, 간부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신발은 낡은 상태였다. 어머니가 시장통에서 온 만원짜리 신발을 신다가 밑장이 다 떨어져 어머니 아는 분을 통해 오공본드 같은 것으로 주변을 살짝 발라 다시 붙여서 신고 다녔다. 하필 신발이 멀리서보면 아식스 브랜드와 유사하게 생겨서 나에게 "이거 아식스 신발이야?"라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간부 수련회에서 축구를 한다는 소리에, 내 신발을 자연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본드 붙은 부분이 간당간당해 축구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아식스 신발을 한번즈음은 사서 신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그날 밤 신발을 사달라 말했다. 어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다음 달에 사면 안되겠냐"고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어리석었고 후회한다.


어머니는 멀리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다음날 아버지가 한걸음에 달려와 내게 아식스 신발을 사줬다. 그리고 "이제! 됐니?" 이러면서 다시 자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었지만 나는 그저 아식스 신발을 내려다보고 다시 아버지 뒷모습을 쳐다보고 그리고 후회했다. 나는 헛똑똑이었다.


둘째는 동급생과 싸움사건이다. 열등감의 산물이었던 나는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과장된 표현이 약간 들어가있지만 한대 맞으면 두대 때렸고 일단 먼저 쓰러지거나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나는 싸움을 잘 한다기보다는 솔직히 약간 미친개였다. 그래서 건드는 사람이 딱히 없었다고 봐야겠다. 이상스레 그날 시비가 붙었다. 그 동급생은 나에게 가난하다고 신발과 가방 등을 지적하며 놀려대기 바빴다. 그리고 동급생과 정말 죽어라 싸웠다. 나도 많이 때렸고 많이 맞았다. 다음날 나는 교무실로 바로 끌려갔다. 동급생의 어머니가 화난 채로 날 맞이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을 호출했다. 어머니는 공장에 있었다. 아버지가 달려왔다. 아버지가 동급생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진 것만 같았다.. 무릎을 꿇자 난장판이었던 분위기가 진정되고 난 당분간 화장실청소 징계로 마무리되었다. 담임선생님이 오늘은 빨리 집에 가보라해서 아버지와 함께 밖을 나와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며 일단 어떤 식으로든지 엄청 깨지겠다 싶었다. 두려운 마음에 조심히 뒤를 따랐다. 아버지가 뒤를 돌아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이겼지?" 나는 그 말에 왜 이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거다. 분위기는 최악이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용기가 "그래서, 이겼지?" 였다. 나는 그 말에 멋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뒤를 따라가던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친해진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버지의 '근성'을 닮고 싶었다. 어려움을 처해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우리 가족을 어떻게든 지켜왔던 근성 말이다. 다행히도, 그 근성이 내 유전자에게도 스며들어가있던 모양인지 나 역시 근성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서른두살,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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