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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8. 2020

반장과 피자 귀퉁이

반장은 나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반장 엄마라는 책임감을 주는 것

여섯번째 에피소드이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열등감의 산물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평균적으로 잘했다. 공부, 운동, 싸움, 게임 등을 곧잘하니 친구들이 나에게 몰려들었고 리더십도 자연스레 생겼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어있었다. 반장 선거를 치루면 거의 90% 이상 지지율로..!


사실 생각해보면 반장은 별로 하는 일은 없었다. 반장, 부반장 모임인 학생회 활동하고 주요 사항 전달하고 크리스마스 Seal 모으고^^ 가장 큰 일은 바로 반장으로 뽑히면 피자를 쏘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제일 큰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반장이 되고 통상적으로 피자를 쐈다. 원플러스원 피자로 11900원에 두판을 주는 제품으로 질보단 양으로 승부했다.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려 넉넉하게 한명당 한판을 먹을 수 있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날 "일이 터졌다." 야자시간 때, 피자가 배달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고맙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옆반에도 피자배달이 왔다. 유명 브랜드 피자였고 똑같이 한명당 한판이 나눠졌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옆반 반장은 나보다 집안 형편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나은 아이였다. 한 친구가 나 보고 들으라는 투로 "아.. 피자 귀퉁이 맛 없어서 못 먹겠네. 치즈크러스트 먹고 싶다." 다행히? 나는 그 친구를 발로 차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어렸다면 아마 발이 먼저 날라갔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성격은 어디 안 가기에 피자 포장곽을 들고 돌아다니며 주섬주섬 맛 없다고 한 피자 귀퉁이를 다 담았다. 정말 한그릇 찰 정도로 피자 귀퉁이가 모였다. 그 친구들 다 들으라고 내가 한마디 했다. "우리 엄마가 공장다니면서 어렵게 번 돈으로 사준거다." 야자 끝나고 집으로 피자 귀퉁이를 다 들고 왔다. 그것을 정말 며칠동안 꾸역꾸역 간식으로 다 먹었다.


수능을 평소와 다름없이 쳤고 내신 성격도 좋았던 나는 합격한 대학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모두 의외라고 생각한 대학이었다. 합격한 대학 중 가장 좋지도 않았으며 지역 연고도 없었다. 그 대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장학금' 때문이었다. 난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밤 늦게 온 어머니에게 '합격증'을 보여주고 대학을 선택한 이유도 말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돈이 필요없을 것 같아요. 돈 필요하면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면 되고."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아들이 반장하는 것이 참 부담이 되더라.."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내가 반장이었지? 어머니가 반장이었나? ...  나는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담담히 들었다. 학년이 바뀌고 새학기가 시작하면 왠지 걱정되었다고 했다. 올해도 반장을 할까? 하면서.. 솔직히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반장 엄마를 하면 조금씩 조금씩 돈이 많이 드는데.. 그것도 사실 많이 부담이 되고, 특히 반장 엄마로서 한번도 학교를 가지 못하고 부반장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고 학교를 갈 수가 없으니 부탁한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했다. 그렇지만.. 차마 그 말을 못했다고 했다. "아들이 잘나서 반장을 한다는데.. 엄마가 말을 못하겠더라.."


뭔가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했다.

내가 반장을 한다는 것에서 한번도 어머니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내가 반장이 되면 어머니는 반장 엄마가 된다. 당연한 명제를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나는 어렸고 철이 없었다. 슬펐던 사실은 어머니가 나에게 그 말을 하기 위해 6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매년마다 반장뽑는 시기가 되면 가방 메고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슬펐다. 나는 그 길로 집 밖으로 나와 골목에 쭈그려 앉아 펑펑 울었다. 미안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당시, 어머니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어깨에 진 무거운 책임감. 그 책임감에 나는 '반장 엄마'라는 또 다른 책임감을 되레 얹어준 것이다.


그 날이 나에게 '누군가의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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