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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21. 2020

기회는 공평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된 첫번째 이유

일곱번째 에프소드이다.


사실 브런치 작가로 신청을 하며 사회적기업을 통한 사회의 불합리함을 목격했고 그를 해결해보려고 십년을 보냈고 지금은 국회라는 제도권 속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것을 글로 남겨보자고 생각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선행과제가 있었다.


바로, 내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스무살때 갑자기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십대때부터 쌓여온 불합리함에 대한 반감일 것이다. 그것을 먼저 정리해보고 싶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내가 본 정보의 불평등에 대한 불합리함이다.


우리 동네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당히 낙후된 동네이다.

산동네로 아직도 비만 왔다하면 산사태가 나고 태풍이 오면 지붕이 날라간다. 그 속에서 나는 절대적인 우등생이었다. 중학교를 전교2등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내신성적은 1.3등급 수준이며 모의고사도 460점 내외를 왔다갔다 했다. 나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딱 한가지, '장학금'은 나에게 정말 중요했다.

  

대학 지원 후, 결과가 나왔다. 여러 곳을 붙었다. 그 중에서 나는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부산에서 연고가 없었던 대구를 갔다. 첫 수업 이후 장학생들은 학과사무실에서 불러 상황점검을 했다. "인호 학생은 보니깐 학교 장학생도 되고, 이공계 장학생도 되네요. 어떤 것 선택하시겠어요?"


이 말이 내 분노의 시작이었다. 너무나 무식하게도 나는 그 전까지 장학금은 학교에서만 주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근데, 이공계 장학생은 뭘까?? 반문을 했다. "이공계 장학금이 뭐죠?" 알고보니 지금의 국가장학금 이공계 버젼이었다. 수능 수학.과학탐구 우수자 중에서 일정 학점 이상이면 4년 간 전액장학금을 주는 제도였다. 어... 그렇다면? 내가 합격했던 다른 대학에서도..?? 응?? 정말?? 내가 과오를 인정하기 싫었지만 너무 처참해서 그날 소주 한병을 원샷했다. 그리고 기억이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도, 멀리 떠나있던 아버지도, 공장에서 미싱을 하며 밤11시에 들어오던 어머니도,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는 나에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정보를 모두 알고 모교를 선택했다면, 그건 내 선택이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 과연 '정보'가 있었으며 '기회의 평등'은 존재했는가.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


그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규율을 잘 따르며 모범생 기질이 있던 내가 점차 변하고 있었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내 몸 속에서 꿈틀대는 '욱'성질. 그리고 사회의 불합리함을 몸소 느끼며 변화를 시켜야겠다는 똘끼.


나중에 사회적기업을 창업해서 나는 청소년들에게 멘토링을 하면서 '정보'를 주는 것. 즉, '기회의 평등'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난 수도권 강남3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대부분 정보를 잘 취득하여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방 소도시, 도서 산간 지역으로 주로 돌아다녔다. 딱 하나의 생각 뿐이었다. '경북 예천군에 있는 미래의 앨런머스크를 놓치지 말자.'


경북 예천군에는 미래의 앨런머스크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주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주변 국립대 행정학과에 입힉해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친다면.. 그러다가, 자신이 소프트웨어 천재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면? 그는 그때서는 앨런머스크가 될 수 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될 수 없다. 전공선택이란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내가 그랬고 실제로 그렇다. 그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접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언제든지 있었다고 사회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건 분명히 주요 개혁 아젠다다. 기회가 평등하여 정보를 모두 습득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누구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게 공정한거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십대를 잔망스럽게 살았다. 나를 고맙게 생각하는 제자들이 있다. 이제는 어엿하게 사회인이 되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누군가가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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