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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24. 2023

혜선이 결혼하는 날

4년 간 내게 수학을 배웠던 제자가 나보다 더 어른이 된 날

260번째 에피소드이다.


하프 마라톤을 뛰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정신 나갔다고 하겠지만, 헐레벌떡 목욕탕에서 나와 대구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었다. 혜선이가 결혼하는 날이라 그곳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혜선이는 내게 4년 간 수학을 배웠던 제자다. 대학교 시절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대상으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 봉사활동은 단순한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내 이십대를 지배한 사회적기업 창업으로, 비즈니스 맨이 되면서 그 영역에 대한 학습적 공부를 하기 시작한 기폭제가 되었다. 어느 기관에 가서 하는 방식이 아닌 국립대학교를 개방해 강의실에 학생들이 찾아오는 방식이었다. 거기서 혜선이를 만났고 나는 수학을 주로 가르쳤다. 공학을 전공했다보니 미적분학은 쉬웠고 특히 대학교 1학년을 갈아넣으며 돈을 긁어모았던 과외 스킬이 수학클래스를 진행하는데 천군만마가 되었다. 혜선이는 대구에 있는 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초반에 적응을 하지 못해 내게 곧잘 고민상담을 하곤 했다. 나는 그래도 혜선이의 잠재력을 믿었고 가정환경에 굴하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에 너무 힘을 뺏기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클래스는 항상 대학교 강의와 같이 수업계획서를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직접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내가 강조하는 '선택할 기회의 자유'가 운영하는 전체적인 공부방 클래스에 투여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국립대 많은 학생들이 대학생 교사가 되어 수학, 국어, 영어 등 교과목 뿐만 아니라 대학전공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건축학, 경영학, 심리학 등도 개설되었다. 아무튼 그 클래스 중에서 혜선이의 원픽은 내 수학 클래스가 되었다는 건 항상 고마운 일이었다. 혜선이는 영어를 무척 잘해서 독학으로 대학생이었던 나보다 훨씬 더 영어를 잘해, 내가 배우곤 했다.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만으로 그렇게 해낸 것이다.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결국 혜선이는 한 사립대 국제특성화 학과에 입학했다. 외국대학과 교류, 복수학위제 등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개설된 학과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연락이 와 추천서를 하나 써달라고 했다. 대학교 내 글로벌 인재 장학생 선발을 하는 것이 있는데 누구의 추천서를 받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생각이 났다고 했다. 혜선이가 어떻게 성장해온 지를 알기 때문에 성심성의껏 내가 본 혜선이의 모습을 추천서에 기재했다. 면접까지 본 꽤 긴 호흡의 장학생 선발과정이었는데 최종적으로 선발되었단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기뻤다. 방학 때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미군 기지 근처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왜 그곳에서 하냐고 물어보니 "영어를 실제로 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곳이 이만한 곳이 없더라고요."라고 답변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깔끔한 우문현답이 없었다. 혜선이 옆자리는 그곳에서 일하며 만난 훤칠하고 듬직한 미국인 남편 분이 결혼식장의 주인공으로 오늘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극도의 이성주의자이지만, 가끔은 감성적이 되곤 한다. 대구 서구의 한 어머니께서 밤에 전화가 오셔서 가정형편으로 딸을 학원을 못 보내는데 무료로 학원과 준하는 수준으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씀하셨다. 곧장 서구로 택시타고 가 만난 어머니는 허름한 맨션 앞 동네 카페에서 나를 맞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네 카페의 컵이었는데 제각기 다른 모양의 컵들에 커피가 담겨나와 통일성을 갖추지 못했다. 그 카페는 동네의 사랑방이었고 어머니는 내게 부탁을 하러 와 최선의 대접을 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택시에서 대학생이 된 혜선이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너 4년 동안 돈도 안 받고 수학 공부 가르쳐줬으니 이제는 그거 좀 갚아." 내 말에 바로 알겠다고 한 혜선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따님은 혜선이와 함께 공부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결혼식을 보면서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사람들과 복닥복닥 엮이기도 싫고 항상 빨리 가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해 밥만 빨리 먹고 나가면서 아래와 같이 메세지를 남겼다. "행복해라. 너의 청소년 때 고민이 지나고 보면 결국 어떻게 잘 살지, 어떻게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느낄거다. 그 고민은 해답을 쉽게 찾기 힘들고 대부분 모두 평생 죽을때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일거다. 다만 이제는 옆에 오로지 내 편이 있어 그 고민을 함께 해줄테니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거다. 결혼하면 나보다 좀 더 어른, 엄마가 되면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인데! 나보다 좀 더 어른이 먼저 되어 존경한다." 나중에 부산역에 기차가 도착할 때 즈음, 혜선이로부터 답장이 왔다. "쌤ㅠㅠㅠㅠ그래도 나랑 좀만 더 얘기하고 가지ㅠㅠㅠㅠ먼길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해요! 고민많은 청소년기에 쌤을 만나서 행운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쌤을 첨 만났을때 쌤이 지금 내 나이었던거 같은데 다시 생각해도 쌤은 보통 인간이 아닌거 같아요."


행복해라! 청소년 시기를 누구보다 잘 견뎌왔고 이제는 나보다 더 어른이 된 혜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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