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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11. 2020

아버지의 근성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가장 닮아가고 있는 듯 하다

스물일곱번째 에피소드다.


나에게 10대는 가족해체의 순간이다. 십년 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내 가난을 놀려대던 동급생에게 주먹을 날려 크게 쌈박질해서 학교에서 사고쳤을 때

어머니께 "나는 왜 공부를 잘하는데 돈이 없어서 운동화 하나 못 사주나"라고 상처줬을 때

그때를 제외하고는 내 기억에 등장하지 않는다. 항상 일요일 아침마다 "아버지, 어딨니?"

빚쟁이들의 전화를 받게 하는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다. 누가 그 기분을 이해하겠는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빚쟁이들이 현관문에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들을 애써 외면하지만 한동안 같이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함께 상다리를 펴놓고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보내는 그 기분을.. 참 비참하다.


IMF시절 땅에 있던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한동안 집에 들어오질 않던 아버지는 근 한달만에 집에 들어왔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같았다.

수염을 자르지 않고 밤 늦게 들어온 그는 어머니와 한동안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즈음 나는 알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도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억지로 몸을 벽쪽으로 돌려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단칸방에 불이 켜져있고

뒤에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이야기하고 계시니.. 나는 잘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나, 다시 공부를 해야겠어."


나는 이것의 무게를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원래 없던 집이며 IMF로 사업이 부도가 나서 빚더미에 앉은 우리 가족의 가장의 한마디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믿었고 감내하는 시간만큼 미싱공장에서 10년 넘게 '시다'로 불리었다.

지금 30대 넘어 항상 '나였으면'이란 가정을 해본다. 과연? 나는 그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을까?

당장의 빚을 갚기 위해 막노동을 한다거나,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다거나, 자살을 한다거나..

뭐 그런 옵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정면돌파하면서 미래를 그렸다.


뒤늦은 공부, 그리고 빚을 갚으면서 참.. 그때 우리 가족 못볼 꼴 많이 봤다.

아버지는 석,박사 공부를 하며 막일부터 시간강사, 그리고 단칸방에서 보일러도 없이 지냈다.

우리 가족 역시, 단칸방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았기에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워 겨울에 씻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교수로 임용되었다. 솔직히 그 경위는 잘 모른다. 다만, 해냈다는 건 명백하다.

나는 아버지의 실력보다 근성을.. 높이 평가한다. 정말 이 악물고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

그 이외에는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었을까?


한차례, 대학에서 부침이 있어 다른 대학을 알아보게 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 아버지는 초조한듯 보였다. 내색은 안하지만 은퇴를 해야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어느날 7년까지 계약서를 당당히 보여주며 자랑했다. "봐봐.! 이렇게 평행이동한 사람. 잘 없다."

자신이 여전히 가정의 가장으로, 자식에게 아버지로 건재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얼마 전  나에게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사진을 보고 순간 “풋!” 웃었다.

대학 입학관리처장으로 중책을 맡은 자신의 명패를 사진을 찍어보냈다. "그래! 나는 건재하다."


일전에 한번 부침이 있었을 당시, 어느 기관교육을 받기 위해 내가 아버지 지원서를 대신 써준 적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을 하다, 


“58년 개띠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하고 IMF를 겪으며 

고된 나날을 보냈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딸과 아들을 낳고 부끄럽지 않게 가정을 지켜내었다... (중략)” 

이렇게 서두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참! 대단한 삶을 살고 계시다. 그 근성을 나는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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