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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12. 2021

다시금 일상, 소신 그리고 대학원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 반드시 올곧게 잘 되어야 한다. 

쉰세번째 에피소드다


한동안 연재식으로 청년상담을 했던 사례들을 나열했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한가지 내가 견지하는 건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쉽게 내뱉지 않아야 할 말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그들의 고민을 치기어린 철없음으로 치부해버리는 행위다. 그것을 내뱉는 순간 이건 상담이 아니라 가르침이고 소통이 아니라 훈계가 되는 마법이 벌어진다.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정치인, 교수, 사회운동가들이 많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나 역시 올해 서른세살로 이십대 청년들의 고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이 바라는 안정적인 직장과 연봉,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이나마 생기면서 그들의 고민은 현재 내 고민과는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오히려 직장인들의 사회생활 고민이 내겐 더 와닿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유다.

나는 이십대는 제도권 밖에서, 그리고 삼십대는 제도권 안에서, 사십대는 리더로서 내 의견을 말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살아간다. 내가 경계하는 선민사상, 엘리트의식, 그리고 권위주의가 그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마저 없다면 나조차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라 믿는다.


내가 서른살이 되면서 부담감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내가 정말 올곧게 잘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사회운동가로서 이십대를 잘 보냈다. 잘 보냈다는 말은 참 모순적이다. 어찌보면 거의 유일하게 나만 남았다. 하나 둘씩 한계를 절감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만 있더라. 근데 나는 기획력과 더불어 개인의 스타성도 있었는지 꽤 잘된 편이다. 내가 창업한 사회적기업도 성장을 이루었고 나 역시 개인 인지도를 갖출 정도로 사회운동가로 잘 성장했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이십대에 나와 유사한 또는 훨씬 더 뛰어난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 롤모델이 나라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 자신이 더 무서워졌다. 실수없이 올곧게 정말 잘 되어야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원히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그들은 이 분야에서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떠날 것이다. 그러면 여긴 더욱더 힘들어진다. 내가 반드시 잘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서른한살에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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