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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15. 2021

그러면, 지역은 언제 혁신합니까

대학원 면접 후기

쉰네번째 에피소드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세부전공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라 있다.

여기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는 두가지다. 개인적으로 '종결'의 의미를 가지고 싶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십대를 사회활동가로 잘 보냈다. 그리고 앞선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있었다. 그래서 삼십대에는 좀 더 제도권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야 내가 차지했던 자리를 후배들이 쉽게 채우고 나 역시 이십대 경험을 바탕으로 삼십대에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아무런 결과물을 만들지 않고 '종결'하자니 이십대에 고민한 것들이 허무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석사논문이라도 하나 써놓자!'라는 나만의 종결 방식을 정한 것이다. 그래야 좀 더 미련이 없을 것 같았다.


또 한가지는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역혁신을 위한 롤모델'이었다.

사회적경제대학원이 지역에도 막 생기고 있었으며 대구는 대구가톨릭대학에서 석사과정으로 도입되었으며 대구대학교는 리더과정으로 1년 코스가 존재했다. 다만 배울 기회는 기틀이 잡혀있는 곳으로 하고 싶었고 한양대가 그 당시 8기 석사과정이었으므로 내게 선택지가 되었다. 다만 대구를 기반으로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의 극복이 곧 롤모델로서의 가치연장이었다. 지역 인재들이 서울로 떠나고 싶어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공과 부의 기회가 많은 곳을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을 '배신자'라고 규정해버리면 삼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지역에 기반을 잡고 배우는 것을 서울에서 배우는 모양새가 된다면 서울에서 배운 것들을 지역에 전파하고, 지역의 문화를 서울에도 전달하는 가교 역할의 의미가 있겠으며 나중에 졸업하고 선택지가 반드시 서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되레 기반이 있는 대구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석사과정에 입학하면 반드시 통학방식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던 이유는 한양대를 SK그룹과 아이쿱이 장학금을 조성하여 전원에게 지급하고 있었기 때문이긴 하다. 학비 부담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어드미션만 받는다고 하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석사과정의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갔다. 보통 한양대 사회적경제 대학원과정은 6대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장학금 혜택과 함께 SK그룹,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KOICA 등과 연계된 네트워크가 강점으로 부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하다가 면접을 보러 가서 교수님의 첫 질문이 이거였다.


"다 좋은데, 커리어도 좋아. 근데 지역이 대구네. 학교 온전히 다닐 수 있겠어?"

그 말을 듣고 어찌 해야 하나.. 자취방을 구하겠다고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들다가 잔망스럽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정말 그랬다) "교수님. 제가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한양대가 사회혁신 분야에서 일류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혁신은 사회에 부조리가 있다면 바꾸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알고 있듯 한양대 사회혁신에서 일류 아닙니까?" 이 질문에 삼류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는 답변에 나는 바로 되받아쳤다. "저도 사람이니깐 당연히 일류에서 공부하고 싶다. 근데, 사회혁신 분야에서마저 수도권과 지방을 나누면 도대체 언제 지방은 사회혁신하는겁니까?"라고 말했다.


정적이 흘렀고 나도 눈치를 한번 봤다. '너무 잔망스러웠나?'

곧 교수님께서 "너.. ㅎㅎㅎ 답변 준비 잘했네"라고 했다. (실제로 정말 그랬다) 즉흥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응어리 차있던 말이기도 했다. 지방대를 다니면서 느꼈던 생각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해 연말 나는 한양대 사회적경제 대학원 생기고 첫 수도권 이외 지방 석사과정 입학 어드미션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경남, 경북 출신들도 석사, 박사 과정으로 입학하여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다. ^^;; (대단하신 분들이다)


평일 야간 수업이 끝나면 밤 9시50분인데 교수님께서 하실 말씀이 길어지시면 밤 10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가방을 들쳐메고 한양대역에서 서울역까지 후다닥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한번은 플랫폼 계단을 뛰어내려왔는데 바로 내 앞에서 기차 문을 닫히고 출발해버린 적이 있었다. 대구까지 가는 기차는 밤 10시30분여서 나는 졸지에 오갈데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가방을 땅에 내던져버렸다. 또 한번은 기차타고 내려오며 졸았다가 깼는데 갑자기 기차가 역에 서서 놀라 가방을 들고 내려버렸다. 근데, 김천구미역이었다. ㅎㅎㅎ 참... 얼마나 바보같고 허탈하던지.. 그래서 찜질방 가서 몸을 뉘이는데 서럽고 '내가 지금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이 이 과정을 버텨야 나 역시 입신양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런 내 개인사례로 말미암아 대구에서 이십대를 보낸 청년활동가들이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서울로 대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쌓고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훌쩍 2년이란 과정이 지났고 올해 8월이면 석사과정을 졸업한다.

나에겐 '종결'의 의미가, 한편으론 '롤모델로서의 책임감'이 동시에 존재한 도전이었다.

논문을 다듬는 상반기를 통해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앞으로는 대학원에서 느낀 점을 몇가지 더 적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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