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지나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있어요. 바로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 시리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2199년을 배경으로 시작해요. 기계가 고도로 발달한 미래. 인간과 기계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는 인간의 생체를 자원화하여 에너지를 추출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배양되지만 정신은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 속에서만 존재해요. 인간은 가상세계 매트릭스를 실재보다 더 실재같이 받아들이며 기계로부터 지배당하는 현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 실아가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가상을 실재처럼 구현해 놓은 이 매트릭스는 SF 영화 줄거리 속에서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매트릭스가 처음 세상에 나온 무렵인 약 20년 전만 해도요.
▲ 영화 매트릭스를 대표하는 장면. 이 장면의 배경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공간이 배경이에요.
물리적 공간이 디지털 공간으로
디지털 트윈의 탄생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실재(reality) 세계의 객체나 시스템을 가상화(appearance)하여, 3차원 데이터 모델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해요.(옥진아, 정효진, 2023) 바꿔 말하면, 물리적 공간을 디지털 공간에 복제하는 기술이죠. 마치 현실 공간을 가상공간에 옮겨놓은 매트릭스 프로그램처럼요. 디지털 트윈이 처음 세상에 나온 시기는 2003년 미시간 대학에서 물리적 개체를 가상현실에 디지털화하여 표현한다는 개념으로 처음 소개되었어요. 디지털 트윈 기술은 등장과 동시에 업계와 학계의 큰 주목을 받게 돼요. 출현 이후 NASA에서 우주 탐사 기술 개발 로드맵에 활용되거나, 제네럴 일렉트릭(GE)의 제품 개발에 적용되기도 했어요.
디지털 트윈의 핵심과 차별성
디지털 트윈 기술의 핵심은 시간, 공간, 안전, 비용 등의 제약을 넘어서서 가상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에요. 제품·서비스뿐 아니라 거대기업의 절차와 시스템을, 하나의 도시 전체를, 중차대한 국가정책도입에 대한 실험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기술이 적용가능한 범위가 계속 늘어나면서 관심이 점점 증대되고 있어요. 메타버스 또한 가상공간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트윈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와 ‘비슷한’ 공간인 반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세계와 쌍둥이처럼 ‘똑같이 복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해요.
디지털 트윈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최근 디지털 트윈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기술의 가속화로 디지털 트윈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디지털 트윈은 실시간 데이터 수집 및 저장함으로써 통찰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며, 물리적 개체가 디지털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해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인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등이 디지털 트윈을 이끌고 있어요.
1.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사물 인터넷은 사물을 연결시킨 거대한 네트워크를 의미해요. 연결은 사물-사물, 사람-사물 또는 사람-사람 간의 연결이 포함되죠. 디지털 트윈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기술이에요. 사물 인터넷은 센서를 사용하여 실재 개체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전송함으로써 물리적 개체의 디지털 복제를 생성하며,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하고 실시간으로 디지털 공간에 생성해요.
2. 클라우드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저장하기도 하고 접근하기도 하는 기술이에요. 이를 통해 대용량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게 되고,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죠.
3. 인공 지능(AI)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추론·지각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해 놓는 기술이에요. 이 인공지능은 획득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가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결과를 예측하고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트윈을 지원해요.
4. 확장 현실(XR)
확장 현실(eXtended Reality, XR)은 가상현실(Augmented Reality, AR),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및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과 같은 몰입형 기술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포괄적인 용어예요. 이 기술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병합하며, 사용자가 디지털 콘텐츠와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해요.(Mohsen Attaran et al, 2023.)
출처 : Mohsen Attaran et al. Digital Twin: Benefits, use cases, challenges, and opportunities.(2023)
현실이 만드는 가상
디지털 트윈의 해외 사례 - 싱가포르의 Virtual Singapore 등
싱가포르는 디지털 트윈을 통해 2018년부터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여 국토 전체를 복제했어요. 싱가포르의 인구를 비롯해 모든 건물과 도로, 인프라뿐 아니라 기후정보까지 구현해 버린 거예요.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시를 대상으로 한 가상 실험, 가상 테스트베드, 계획 및 의사결정, 연구 및 개발이었어요.
예를 들면, 3·4G 네트워크가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을 시각화하여 파악하고(가상 실험), 거대한 스포츠 경기장에 비상상황이 발생할 시 사고예방을 위한 대피계획을 실험해 보거나(가상 테스트베드), 교통흐름과 보행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교통 관련 정책이나 계획에 활용하고(계획 및 의사결정), 국가의 모든 데이터가 모여있는 만큼 새로운 기술이나 기능을 개발하는데 활용해요.(연구 및 개발)
출처 : Andy Walker, Singapore’s digital twin – from science fiction to hi-tech reality, 2023. ▲ 싱가포르 Open Map 홈페이지
싱가포르 사례뿐 아니라, 영국은 NDTp(National Digital Twin programme, 2018)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모빌리티·교통흐름과 연관된 도시 현안의 문제를 해결하고, 핀란드는 칼라사타마(Kalsatama)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바람 흐름 분석, 태양광 시간 분석을 하는 데 사용하며, 미국 뉴욕은 도시의 그림자를 분석하거나, 독일 베를린은 부동산 정보나 도시계획정보를 제공하는 등 전 세계에서 디지털 트윈 기술은 다양하게 쓰이고 있어요.
디지털 트윈의 국내 사례 - 디지털 트윈국토 / 서울의 S-MAP
국내도 2021년에 국토부 주관으로 디지털 트윈국토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어요. 이 시범사업은 1차와 2차 구분되는데, 1차 디지털 트윈에 참여할 도시 10개(인천시, 제주도 등)를 선정을 마쳤어요. 그리고 2024년부터는 디지털 트윈국토 사업을 통해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이 행정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해요. 그렇게 된다면, 위의 해외사례들과 같이 도로상황을 예측해 최적화된 동선을 실시간으로 찾고, 초고층 건물의 지진·화재 대응 시스템이 좀 더 정교해질 수 있으며, 바람길과 공기흐름을 분석해 미세먼지나 유해물질의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겠죠.
도시 단위에서 서울은 이미 S-MAP(에스맵)이라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공개했어요. 독일 기상청 기술로 서울의 바람길 모형을 구축하고, 산림청과 협업하여 산불확산방지모델을 제공하고,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지도와 같은 서비스에서도 보지 못하는 문화재 여행, 전통시장, 골목길 거리뷰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매력적인 서비스를 구현해 낸다고 해요.
▲ 서울 S-Map(에스맵) 실제 사용 이미지, 서울의 건물에 대한 정보, 지하철 위치 등 도시의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요. ▲ 서울 S-Map(에스맵) 홈페이지
가상이 만드는 현실
디지털 트윈이 주는 효용은 명확해요. 재난·안전 분야에서는 화재·수해·산불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으며, 환경분야에서는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에너지 사용 및 쓰레기 배출을 세심히 관리할 수 있고, 도시계획관리/행정지원/인허가 분야에서는 신속한 인허가/행정지원이 가능해지고 도시변화 예측이 용이해지며, 교통분야에서는 도로변화탐지를 통한 효율적인 이동계획 등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근래에 소개되는 과학기술 중에서도 역기능이나 윤리적 문제를 거의 내포하지 않고 이점이 훨씬 많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어요.
디지털 트윈 기술은 기능적 효용 외에도 더 흥미를 갖게 하는데요. 바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시뮬라르크는 매트릭스를 관통하는 메시지 중 하나예요. 영화 초반부 네오가 펼치는 책으로 잠깐 등장하는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1981). 이 책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집필한 책으로, 시뮬라르크(Simularces)는 실재 또는 원본을 대체하는 인위적인 복제물을 의미하며,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원복을 복제하는 현상(시뮬라르크의 동사형)이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어요. (이 개념은 최초에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으로부터 출발했어요. 이데아가 원형이고, 이 이데아를 복제한 것이 현실, 다시 이 현실을 복제한 것이 동굴 안의 그림자로 비유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시뮬라르크는 원본과 동일해지는 것 이상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플라톤은 복제가 반복될수록 실재와 멀어지는 것으로 보았고 그만큼 참된 가치와도 멀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플라톤의 복제는 실재와 계속 멀어진다는 점에서, 디지털 트윈은 실재와 복제가 상호 반복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 진실(현실 세계)을 깨닫길 원하는 주인공 '네오'.
다시 디지털 트윈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사는 현실 공간은 실재 세계이고, 디지털 트윈 기술로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공간은 가상세계처럼 인식돼요. 디지털 공간은 현실 공간을 복제했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실험은 현실 세계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데 영향을 주게끔 설계되어 있어요. ‘현실 공간 → 디지털 공간 → 현실 공간’이라는 복제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면 실재와 시뮬라르크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나아가서, 시뮬라르크를 언급할 때 같이 언급되는 개념이 있어요. 바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현실 위에 현실’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복제된 시뮬라르크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거나, 나아가 실재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 점에서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공간은 하이퍼-리얼리티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현실 공간이 시뮬라르크 또는 하이퍼-리얼리티와 비슷하다는 인상이 긍정적인지, 반대로 부정적인지 아직은 평가할 수 없어요. 하지만 평가와 상관없이, 디지털 트윈 기술이 현실 공간과 가상공간을 이어주고 있는 시기가 이미 도래한 것은 틀림없어 보여요.
▲ 현실세계를 알게 되어 혼란스러워자 매트릭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조력자 '모피어스'. (한글자막 있음)
참고
[사회문제해결플랫폼] 도시가 똑똑해지려면 쌍둥이가 필요하다?
[논문] 강명진, 박대진.(2023).사용자 및 이기종 사물간의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디지털 트윈기법.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27(4),503-510.
[논문] 박현길.(2023).디지털 트윈의 이해.마케팅,57(4),37-46.
[정책/연구] 옥진아, 정효진.(2022).경기도 디지털 트윈 행정서비스 도입을 위한 과제와 대응방안.정책연구,1-231.
[연구] Mohsen Attaran, Bilge Gokhan Celik, Digital Twin: Benefits, use cases,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Decision Analytics Journal, Volume 6, 2023.
[저널] 박현길.(2023).디지털 트윈의 이해.마케팅,57(4),37-46.
[기사/저널] 민보경, 메타와 멀티의 시대, 공간과 장소의 의미, 파이낸셜뉴스, 2023. 4. 18.
[논문] 이종한.(2004).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보이는 보드리야르의 가상 세계와 시뮬라시옹>.만화애니메이션연구.통권 제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