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0: 노도술의 이야기
혀끝에서 달콤하고 몽롱한 기운을 느꼈다.
어린 시절, 노도술 원장이 건넸던 요구르트의 맛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낡은 트럭 조수석에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차창 너머로 어둠이 짙게 깔린 산길이 스쳐 지나갔다.
트럭 엔진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노도술 원장은 나를 힐끗 보더니,
내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고 판단한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어딘가 모를 만족감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흐음… 그래, 덕구. 네놈은 참 쓸모 있는 놈이야.
아무도 모르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딱 내게 필요한 재주를 가졌지.”
그는 운전대 위에 한 손을 올린 채,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짙은 담배 연기가 차 안을 채웠다.
“사실 네가 처음은 아니었어.
용주 말이야. 네놈보다 두 살 많은 그 녀석.
처음엔 제법 쓸 만했지. 덩치도 작고, 말도 잘 들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몸만 커지고 굼떠지는 거야.
게다가… 어느 날은 말이야.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신이 든 거야.
힐끗 보니 눈동자가 흔들리더군.
모든 걸 본 거지. 하는 수 없었어.
보육원에 돌아와 잠든 틈을 타서… 바늘로 눈을 찔러버렸지.
두 번 다시는 아무것도 못 보게.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렸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오히려 네놈을 데리고 일을 시키다 보니 일이 훨씬 수월해졌어.
네놈은 용주 그놈보다 훨씬 영리하고 빠르더군.”
원장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마치 낡은 기계를 설명하듯 담담했다.
그는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흐음… 옛날이야기 좋아하지? 덕구야.
내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아주 오래전 일이지.
내가 아직 피 끓는 젊은 놈이었을 때,
이 산골짜기를 제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이었어.
그때 마침, 아주 교활한 일본 놈 하나를 만났지.
경주 고분을 전문으로 파헤치던 도굴꾼 놈이었어.
키는 난쟁이처럼 작고 몸은 여위었지만, 눈은 꼭 굶주린 살쾡이 같았어.
밤이 되면 그놈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번뜩였지.”
원장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는 경멸과 함께 어딘가 모를 동질감이 섞여 있는 듯했다.
"그놈은 도굴한 유물들을 일본으로 밀수하기 전,
잠시 숨겨둘 안전하고 완벽한 은신처를 찾고 있었어.
타지에서 홀로 움직이는 도굴꾼에게는 발각되지 않을 은밀한 장소와
믿을 만한 현지 조력자가 절실했을 테지.
경찰의 눈은 물론, 다른 도굴꾼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곳 말이야.
그는 그런 은밀한 장소를 찾아다녔어.
그리고 나는 이 산골짜기 구석구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들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비밀스러운 길, 아무도 찾지 못할 은신처.
게다가 나는 그 당시 노름빚에 쪼들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처지였고,
법 같은 건 개나 줘버린 개망나니였으니,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완벽한 거래였어.
그놈은 유물을 파내는 기술을, 나는 그 유물을 숨기고 관리할 최적의 장소와 방법을 알았으니까."
노도술은 말을 멈추고 창문을 살짝 내렸다.
쿨럭, 하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퉤 하고 시원하게 가래침을 창 밖으로 뱉었다.
다시 창문을 올린 그의 얼굴에는 묘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우리는 밤마다 몰래 고분을 파헤치고, 유물들을 우리 둘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어.
돈은 썩어 나도록 벌렸지.
그놈은 유물을, 나는 돈을 보며 낄낄 거렸어. 세상에 이런 쉬운 돈벌이가 또 있을까 싶었지."
그의 목소리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 속을 가르며 길게 뻗어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을 동업했어. 그런데 어느 날, 이 나라가 독립을 맞이한 거야.
일본 놈들은 허둥지둥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기 바빴지.
그 도굴꾼 놈도 마찬가지였어.
그런데 이 교활한 놈이, 마지막까지 나를 속이려 들었지 뭐야.
그동안 우리가 함께 파낸 유물들 중
가장 값비싼 것들을 몰래 빼돌려 자기 혼자만 챙겨서 도망가려고 한 거야.
그것도 이 산 어딘가에 숨겨두고 말이야.”
원장은 거친 숨을 내쉬며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던졌다. 붉은 불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나. 그놈을 쫓아가서 추궁했지.
유물이 어디 있냐고, 왜 나를 속이려 드냐고.
그놈은 끝까지 시치미를 떼더군. 결국… 결국 몸싸움이 벌어졌어.
이빨을 드러낸 짐승처럼 서로에게 달려들었지.
한참을 뒤엉켜 싸우다 보니, 그놈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더군.
축 늘어진 몸에서 더 이상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원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섬뜩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마치 그날의 살인을 다시 재현하는 듯했다.
“그놈의 품을 뒤져보니, 이게 웬걸. 유물이 숨겨진 곳이 표시된 지도가 나오는 거야.
낡고 해진 종이에 희미하게 그려진 그림. 이놈이 마지막까지 나를 속이려다 제 발에 걸린 거지.
나는 지도를 따라 이곳까지 왔어. 유물들이 숨겨져 있다는 동굴을 찾았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원장은 혀를 찼다.
그의 목소리에서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여 느껴졌다.
“그놈은 워낙 몸집이 작아서 저 안을 기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저 통로를 통과할 수가 없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몸으로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더군.
손끝에 닿을 듯이 유물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손도 대지 못하는 심정… 알겠냐, 덕구야?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어.”
그는 다시 나를 힐끗 보았다.
내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너 같은 아이가 필요했던 거야.
작고, 날렵하고, 말 잘 듣는 아이. 너는 내가 찾던 완벽한 아이였지.
네 덕분에 나는 그 귀한 유물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어.
그 유물들이 바로 내가 국회의원이 될 힘을 실어줄 거란다.
하하하… 이 노도술이 가 촌구석에서 허송세월만 보낼 줄 알았더냐?
이제부터 시작이야.”
원장의 웃음소리가 트럭 안을 가득 채웠다.
그 웃음은 승리의 쾌감과 광기,
그리고 어린 나를 향한 지독한 비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