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9 : 수상한 대리 기사
“덕구야, 왜 그래? 전화 안 받아?”
태경이의 목소리가 나를 현재로 불러냈다.
귓가에서 울리던 휴대전화 벨 소리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잠시 딴생각을 좀 했어.”
태경이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무슨 생각이길래 전화 온 것도 모르냐.
대리 기사인 것 같은데 나는 택시 호출하면 되니까 얼른 가봐.”
“아니야, 같이 기다려 줄게.”
“됐어, 인마.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구만. 어서 들어가서 쉬어.”
태경이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태경이가 휴대전화를 꺼내 택시를 부르는 동안, 나는 대리 기사를 기다리기 위해 큰 길가에 섰다.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몸은 후끈거렸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길가에는 지나가는 차들만 듬성듬성 보일 뿐, 인적은 드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대리 기사였다.
“손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곧 도착합니다.”
“네, 큰 길가에 서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몇 분이 지났을까, 저 멀리서 한 남자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오른발을 살짝 절뚝이는 듯한 걸음걸이.
그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듯했지만, 그 절뚝거림 때문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마침내 내 앞에 선 대리기사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차 키를 건네받았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넉넉한 체구와 굵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태경이와 작별인사를 했다.
‘태경이를… 죽은 줄만 알았던 녀석을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날 줄이야.’
죄책감과 안도감이 뒤섞인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서 차가 출발했다.
태경이는 차가 움직이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아쉬움, 혹은 왠지 모를 미련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대리 기사가 나를 보며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상냥했다.
“갈증 나실 텐데 이거 드세요.
콜 기다리다가 목말라서 샀는데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하더라고요.”
대리 기사가 주머니에 있던 생수 병을 건넸다.
갈증이 심했던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병뚜껑을 열어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왠지 모르게 혀끝에 씁쓸하고 묘한 뒷맛,
마치 금속을 핥는 듯한 이질적인 맛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순간 의아했지만, 피로와 술기운 때문 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내, 알 수 없는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몸의 감각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차창 밖의 불빛들이 길게 늘어지며 흐릿한 잔상으로 변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애써 눈을 뜨려 했지만,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엔진 소리마저 점점 더 아득해 지다가,
이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침묵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