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7: 무당의 예언
무의미한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나와 기철이 불편한 동행을 하며 코끼리 바위를 찾아 헤맨 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매일 아침, 낡은 승합차는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렸고,
우리는 말없이 창 밖의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땀과 먼지로 뒤덮인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정신적인 피로였다.
찢어진 옷가지와 해진 신발은 우리의 헛된 노력을 증명하는 훈장 같았다.
2주 동안 미친 사람들처럼 산을 오르고 숲 속을 헤맸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간혹 거대한 바위산들을 보기도 했지만,
어릴 적 약 기운 속에서 희미하게 보았던 코끼리 바위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철이의 의심과 추궁은 심해져 갔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나를 꿰뚫었고,
목소리에는 조바심과 불신이 가득했다.
그의 질문은 점점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아니면… 나를 속이고 혼자 빼돌릴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그의 비난은 내 안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나조차도 내 기억이 맞는지, 혹시 아직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남아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낡은 승합차 안에서 침묵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기철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덜컹거리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그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며칠 밤낮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처럼 초췌했다.
눈은 깊이 파여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친구가 알려준 용한 무당집이 있어.
거기 가서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으로 가야 찾을 수 있을지라도 물어보자."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자존심 강한 기철이 미신에 의지하려는 모습은 그의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망설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무당집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낡은 대문은 삐걱거렸고, 묘한 향 냄새와 습한 이끼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코를 찔렀다.
마당에는 알 수 없는 형상의 돌탑들이 쌓여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오색 천들이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허름한 법당 안에는 백발의 노파, 무당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흐릿했지만,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 등 뒤에… 아이들의 원혼이 가득하구나. 그 아이들이 너희의 길을 막고 있어."
그녀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며 손에 든 팥을 나를 향해 뿌려댔다.
'파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팥알들이 내 얼굴과 옷에 부딪혔다.
팥알 하나하나가 마치 뜨거운 불씨처럼 느껴졌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팥을 맞으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기철이는 무당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코끼리 바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당은 방울을 흔들고 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더니,
점차 몸을 흔들고 손짓을 하며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읊조리 듯 이어지다가,
점차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불에 타 죽은 아이들의 원혼을 달래 주지 않으면…
코끼리 바위는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노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의 절규가 뒤섞인 듯한 비명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마치 불길 속에서 고통받는 듯한 몸짓을 했다.
"뜨거워… 뜨거워… 엄마… 살려줘… 불이야… 불이 나를 태우고 있어…."
그녀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그 모습은 흡사 불길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마지막 몸짓 같았다.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보육원 화재의 밤, 불길 속에서 울부짖던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매캐한 연기 냄새, 뜨거운 불길, 그리고 문을 잠근 쇠사슬…
그날 밤의 지옥 같은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숨이 막혔다.
무당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마치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우리는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기철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공포로 흔들렸다.
우리는 얼른 그 무당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해 질 녘 어스름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마치 불길 속에서 타다 남은 아이들의 형상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원혼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아 끄는 듯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 깊이 파고들었지만,
내 몸은 여전히 불길처럼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