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8: 최면 속의 진실
한 달이 흘렀다.
나의 여름방학도 이제 끝이 날 무렵이었다.
조바심이 극에 달한 것은 기철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한 달 동안의 헛된 산행,
그리고 무당집에서의 기괴한 경험은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지만,
코끼리 바위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철이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와 함께 거친 신경질이 묻어났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고, 그 의심은 내 안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어느 날 아침, 기철이가 활기 넘치는 얼굴로 찾아왔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덕구야, 좋은 생각이 났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최면을 봤는데, 놀랍더라.
의식하지 못했던 기억들, 스쳐 지나갔던 자동차 번호는 물론,
심지어 전생까지도 선명하게 되살려 내더군.
백날 산을 헤매 봐야 소용없어.
답은 네 머릿속에 있었어."
그의 말은 황당했지만, 동시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일단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일단 실력 있다는 최면 술사를 수소문했다.
번화가 뒷골목의 낡은 건물 3층에 위치한 최면 치료실은
무당집과는 달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분위기였다.
은은한 아로마 향이 풍기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최면 술사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웠다.
어두운 방 안에 고요만이 맴돌았다.
최면 술사는 편안한 의자에 앉은 나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 이제 편안하게 숨을 쉬세요.
당신의 몸은 점점 더 깊이 이완됩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모든 긴장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껴보세요.
당신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에덴 보육원으로…."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며,
시간의 터널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눈앞에 다 쓰러져가는 보육원 건물이 나타났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곰팡이 냄새가 섞인 불쾌한 공기.
꾀죄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용주 형, 어린 기철이와 태경이까지.
그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옆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한수련 부원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따뜻한 미소는 그 모든 비루한 풍경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빛났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눈가로 고여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차가웠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데우는 듯했다.
최면 술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장면이 바뀌었다.
"이제… 그날, 꿩 사냥을 가던 날로 가봅시다.
트럭에 타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세요.
이른 아침이었죠? 옆에는 노도술 원장이 있을 겁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떻습니까?
표지판이 라던지, 눈에 띄는 건물들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세요."
나는 어느새 꿩 사냥을 가는 낡은 트럭에 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다. 옆에는 노도술 원장이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거칠게 차를 몰고 있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트럭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최면 술사의 말에 따라 창문 밖에 보이는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 대기 시작했다.
낡은 슈퍼 간판, 굽이진 논길, 오래된 느티나무…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왠지 차가 같은 길을 계속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풍경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낡은 슈퍼 간판이 다시 나타나고, 느티나무가 또다시 보였다.
노 원장은 연신 담배를 피우며 아무렇지 않게 운전하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같은 길을 계속 도는 거지?
익숙한 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돌다가,
차는 갑자기 좁은 산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창 밖으로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고개를 한두 개쯤 넘어섰을까.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바위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코끼리 바위였다.
그랬다.
노 원장은 혹시라도 내가 알아차릴까 봐
매번 일부러 마을 주변을 크게 세, 네 바퀴 돈 후에,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길을 통해 코끼리 바위로 향했던 것이다.
코끼리 바위는 에덴 보육원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니 먼 곳에서 코끼리 바위를 찾아 헤맸던 우리는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교활함에 치가 떨렸다.
최면에서 깨어난 나는 기철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노 원장의 교활함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이 한 달 내내 헛걸음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 늙은 여우 같은 놈이…!
우리가 한 달 내내 개고생을 한 게 전부 그놈의 수작이었다니!"
기철이의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이제 더 이상 나에 대한 불신이 아닌,
노 원장을 향한 순수한 증오를 읽었다.
코끼리 바위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서 강렬한 의지를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곳으로 향하는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