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9: 코끼리 바위의 재발견
여름방학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한 달간의 헛된 방황과 최면이라는 기묘한 경험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학교의 교단에 섰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
익숙한 업무들.
모든 것이 어제처럼 그대로였지만,
내 안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기철이의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혹시라도 내가 혼자 몰래 코끼리 바위로 가서
유물들을 빼돌릴까 봐 노골적으로 나를 미행했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집 앞에는 낡은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학교로 향하는 길 내내 뒤를 따랐고,
내가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차를 돌렸다.
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밤늦게 내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돌아가곤 했다.
그의 집요한 감시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마치 투명한 족쇄라도 채워진 기분이었다.
주말이 되었다.
우리는 기철이의 차를 타고 한 달간 지겹게 다녔던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에덴 보육원 자리를 중심으로 마을 어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최면 속에서 보았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수풀이 우거져 언뜻 보면 알아차리지 못할 좁은 길이 나타났다.
흙먼지로 뒤덮인 비포장도로는
키 큰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길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린 듯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수풀이 우거진 언덕 배기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기철이를 멈춰 세웠다.
"여기야. 이 길이야."
내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기철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차에서 내려 길을 살폈다.
그의 눈에는 그저 잡초만 무성한 언덕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면을 통해 되살아난 기억 속에서
노도술 원장의 트럭이 이 길로 들어섰던 그 순간을 선명히 떠올렸다.
우리는 바로 이 길이 코끼리 바위로 향하는 길임을 직감했다.
기철이의 얼굴에는 희미한 흥분과 함께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차는 고개 길을 따라 30여 분들 더 달렸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말없이 창 밖을 응시했다.
좁은 산길은 점점 더 깊은 숲으로 이어졌다.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구간이 이어졌다.
한 달 내내 헤매던 산속과는 다른,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숲의 장막이 걷히는 듯한 순간, 시야가 탁 트였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
산 중턱에 다다르자 거대한 바위의 형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이 멎는 듯했다.
한 달간의 헛된 탐색,
무당의 불길한 예언,
그리고 최면이라는 기묘한 경험 끝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코끼리 바위였다.
멀리서 보아도 그 거대한 형상은 압도적이었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온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형상과도 같아 보였다.
최면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생생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30년 전, 희미한 약 기운 속에서 보았던 그 바위가,
이제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나의 눈앞에 선명하게 존재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기쁨, 놀라움,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섞인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기철이는 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는 나를 내팽개쳐 두고 허겁지겁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유물에 대한 탐욕과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옛 기억을 더듬으며 산을 올랐다.
억센 나뭇가지에 걸려 옷이 찢어지고,
미끄러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손바닥이 까졌다.
쓰라린 고통도 잊은 채, 우리는 마침내 코끼리 바위 아래에 섰다.
거대한 바위는 우리를 압도하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동굴의 입구를 찾아
한 손으로 바위 표면을 훑으며 코끼리 바위의 둘레를 걸었다.
차갑고 거친 바위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이끼 낀 틈새를 더듬던 손가락 끝에
마침내 익숙한 형태의 좁은 틈바구니가 느껴졌다.
"여기야! 기철아, 여기!"
나는 소리쳐 기철이를 불렀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거의 기어 오다시피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내 실망감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입구가 너무 좁았다.
어른의 몸으로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틈이었다.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자그마하던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철이는 못내 아쉬웠는지 억지로 몸을 욱여넣으려고 수없이 시도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입구에 울려 퍼졌다.
옷이 찢어지고, 몸에 생채기만 날 뿐,
그 큰 덩치로 그 좁은 틈새로 들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을 밀어 넣으려다 결국 포기하고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함께 깊은 좌절감이 서려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오면서,
나와 기철이는 어떻게 좁은 입구를 지나 유물이 있는 동굴로 들어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철이는 조바심에 그냥 커다란 해머를 가져와 입구의 돌을 깨부수자고 했다.
그의 눈은 이미 유물에 대한 탐욕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돌을 깨는 소리는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끌 거야.
이곳은 등산객들도 가끔 나타나는 곳이라고.
게다가, 혹시라도 충격에 동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안에 있는 유물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거야."
기철이는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금 깊은 고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끝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코끼리 바위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은 우리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