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아주 작은 징후를 지나쳤다

미션캠프 사기 피해 기록, 누군가는 말해야 할 이야기

by 홍연

밤 10시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두번째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간단하게 씻는 편이었다. 일을 하고 돌아와 조금은 다시 찝찝해져버릴 것을 감안하더라도, 언젠가부터는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일을 마친 뒤에는 간단하게 세안만 하고 잘 수 있도록 집에 돌아오면 입고 있던 유니폼을 세탁기에 돌리고, 머리망을 빼고, 인이어를 제거하며 두번째 출근을 준비한다.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밀려있는 과제들과 일들에도 불구하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오늘도 편의점으로 노트북을 챙겨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서 과제를 하던, 시험공부를 하던 해야 무리없이 시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씻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기시켰다. 주어진 시간동안 일을 해내면서 내가 쳐낼 수 있는 과제의 양이 어느정도이던가 가늠을 하며, 거품을 씻어내고 물기를 닦아냈다.


잠시 씻는 사이에도 휴대폰에는 알림이 잔뜩 쌓여있었다. 전공수업 팀플 단톡방부터, 광고성 메시지들까지. 빠르게 알림창을 훑어내리다 문자함에 도착한 알림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문자를 확인하니 이번에도 익숙하게 담겨있는 사과 메세지.


[홈카페 베타 캠프 환불 안내]
'...이번 홈카페 캠프 베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제품 입고 문제로 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겪은 해외 유통 업체와의 문제로 인해 생긴 어려움에 대해 오히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휴대폰 창을 껐다. 요즘들어 매일같이 오는 알림이었다. 입고 지연. 환불 지연. 업체와의 유통문제로 인한 지연. 배송 지연.

그러려니 했다. 7년 넘게 애정해온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도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예민하게 굴기에는 나는 이미 충분히 피곤했다. 어쩌면 당장 배송이 온다고 해도 지금의 내겐 그것이 오히려 더 부담이 될 수도 있었기에 차라리 잘됐다고도 생각했다. 연장된 프로그램 마감기한만큼, 시험이 끝난 뒤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더는 묻지 않았다.


뒤쳐진만큼 더 악착같이 살아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내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프로그램 정식 오픈 전 피드백을 위해 베타버전에 참여해 프로그램 일정기준 완수 및 설문에 참여하면, 처음에 입금한 참여비도 전액 환불해준다고 한다. 나만 조금 더 열심히 살면 무료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는 콘텐츠 마케팅 프로그램을 듣고 전액 환불을 받았다. 콘텐츠 마케팅을 업으로 삼지는 않겠지만,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애정해온 브랜드의 콘텐츠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강의였다. 그렇게 열정가득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는 문제없이 환급을 받았다.


그리고 시작한 두번째 프로그램은 '책 출판'이었다. 과거 이미 다른 출판사를 통해 POD출판 경험이 있었으나, 한정된 자원과 예산 안에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책의 구조적인 부분에서는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늘 아쉬움에 남았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소설이었으나, 내가 써야하는 것은 에세이였고, 그 안의 세부 주제들은 정해져있었다. 그런 내게 무료로 원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할 수 있다는 광고는 더없이 달콤한 것이었다. 그 글에 맞춘 책디자인까지 해준다하니 나는 더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학기 중에 시작해 석달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빠듯한 감은 있었다. 잠시 멈칫했지만, 그게 내가 도전을 멈출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신청 페이지 및 신청 후 다음날 오후 2시에 안내드린 것처럼 본 프로젝트는 오픈 7일전까지 100% 취소 가능하며,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로는 저희의 강의 및 디자인, 인쇄 노하우등이 공개 되기에 중도 취소, 일정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프로그램 종료 시 설문 참여 후 100% 환급으로 진행됩니다.'

내가 글을 다 써내지 못한다고 해도 설문만 참여하면 환급이 이루어진다는데, 손해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책을 출판시켜 준다는 두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겨울방학 시기에 맞춰 커피머신기 한달 사용 후 사진과 글을 보내는 조건으로 진행되는 홈카페 프로그램과, 한 달에 한 권씩 제공되는 신작 도서를 읽고 리뷰를 제공하는 리뷰 서포터즈 프로그램도 신청했다. 바쁘게 도착하는 문자 알림들 속에서 이제 슬슬 출판관련된 환급절차가 진행되겠구나 생각도 했다.

11월이 넘어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을 때는 그저 안내문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는 '아, 북 디자인과 출판 작업이 마무리 되면 환급이 이루어지겠구나' 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출판 프로그램에서는 무서우리만큼 고요하게 아무 안내도 오지 않았고, 내 문자함을 바쁘게 울리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와, 내가 신청한 프로그램들의 입고 지연, 배송 지연 알림들 뿐이었다.




컨셉진은 내가 2015년도부터 구독해온 잡지였다. 우연하게 찾아온 물음 하나가 추락하던 내 인생에 위로를 던졌던 기억이 여전히 선하다.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잡지에 적혀있던 한 마디.


'당신은 지금 안녕한가요?'


가장 안녕하지 못한 순간에 만난 그 문장이 10년간 이어질 위로와 희망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여러 장소들에 대한 안내, 물건들과 안녕에 대한 사람들의 에피소드. 그 잡지를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 여기에 가야지, 나도 언젠가는 이걸 사야지,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꿈꿨다. 그 이후에도 잡지는 여러 질문을 통해 내 삶에 울림을 전했다.


'당신은 엄마를 잘 알고 있나요?'

'당신은 배려하는 사람인가요?'

'당신은 어떤 운동을 좋아하나요?'


매달 주어지는 질문들에만 집중해도 고단했던 내 삶은 잠시 잊을 수 있었고, 언젠가는 제법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거란 희망도 생겼다. 매진되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과월호는 모조리 구매했고, 잡지가 온 날이면 질문에 대해 종일 곱씹으며 하루를 버텼다. 최근에 산책을 언제 했었나, 생일은 어떤 모습이었나, 나는 어떤 칭찬을 했던가... 우습지만 언젠가는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니면 이런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컨셉진이 내게 전한 위로는 그만큼 강력했다. 누군가의 삶에 위로가 되고 싶다고 늦깎이 대학생으로 돌아와 심리학과에 진학한 내게 어쩌면 정말 잘 맞는 일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잡지는 보이지 않았다. 꾸준히 정기구독하던 잡지가 끊어졌고, 다시 정기구독을 신청하려 찾아봐도 홈페이지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건가, 여러번 검색도 해보고 수소문도 해봤지만 끝내 잡지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단절된 시간 속에서 나는 이미 읽었던 글들을 수차례 다시 읽으며 보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에 인덱스를 달아두고, 밑줄을 치면서. 브랜드가 없다고 위로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날, 인스타에서 마주한 그 잡지는 틀림없는 컨셉진이었다. 미션캠프로 이름은 바뀌었으나 표지도, 구성도 여전해 몰라볼 수가 없었다. 5년만이었다. '아, 이름이 바뀌어서 내가 못찾았던거구나' 생각했다. 그 당시 한참 검색할 때 얼핏 미션캠프라는 이 이름을 본 것도 같았다. 안도와 반가움 속에서 나는 다시 망설임없이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5년 사이에 내 사정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이제는 정기구독을 결제할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고, 잡지에서 소개하는 곳을 가볼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심리적으로 든든하게 지지해준 것 중 하나가 미션캠프라는 사실을 나는 확신했다.

내 침대 머리맡에 여전히 위치해있는 컨셉진의 일부

잡지는 어딘가 미묘하게 바뀌어있었다. 여전한 내용과 질문도 존재했으나, 잡지 한 켠에 여러 프로그램들이 소개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컨셉진의 성격이 미션캠프로 바뀌며 많이 변했구나 생각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컨셉진에서 진행하는 '새로미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지원금을 받고 무료로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나의 애정도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나는 이 브랜드를 정말 사랑했다.

[사진1] 새로미사진3.jpg 새로미 프로젝트로 다녀온 부산 영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뢰는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수십 번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결국 나는 사기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런 미래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 앞에서 매번 같은 선택을 했다. 경계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신뢰가 이미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번 년도는 내게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벅찼던 한해였다. 심리학과의 특성상 대학원까지도 염두에 둬야했기에 학점 사수는 필수였다. 그러나 학생회를 병행하면서 무너졌던 1학기 결과는 전부 B+. 4점초반을 유지하던 학점이 와르륵 떨어져버렸다. 결국 2학기에는 학생회 업무를 조금 미뤄두고 시험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나의 미래도 존재한다는 압박감 속에 하루하루가 갈려나가는 기분으로 지냈다.


매일 도착하는 지연 문자는 잠시 보고 넘겨뒀다. 나는 당장 공부가 더 급했고, 시험공부가 아니더라도 과제와 팀플,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사무국장으로서 최소한 해야하는 일들까지 그깟 사과문자보다 더 중한 일들이 수두룩했다. 커피머신기가 늦어진다고 내 인생이 무너지랴. 언젠가는 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저 내 일상에 더욱 집중했다.

더군다나 나는 내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30대의 늦깎이 대학생. 공부도 급하지만 먹고살 도리도 챙겨야하니 아르바이트도 챙겨야했다. 아르바이트를 조금만 줄이고 싶다는 피로감 속에서, 하지만 절대 그럴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복기하며 나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그 틈속에서 공부했고, 도저히 안될 때는 편의점 근무때마다 공부를 병행했다.

서울에 살다 지방으로 내려와 학교를 다니니 교통에 어려움이 많았고, 조금씩 돈을 모아 차도 살 요량이었다. 프로그램 참가비는 차를 사기 위해 모으고 있었던 목돈을 굴리고 있던 것이라 이번 겨울방학동안 참가하는 프로그램 환급까지 마무리가 되면 차를 살 수 있었다. 힘들지만 정말 한 발자국씩, 나는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날은 시험기간이 임박해 있던, 하지만 학생회 행사와 맞물려 정말 분주했던 하루였다. 문자 알림에 언뜻보니 또다시 미션캠프에서 도착한 메시지. 평소대로라면 지연알림과 거기에 대한 사과가 담겨있어야 했으나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12월 4일날 전달받았던 문자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심각성을 느꼈으나 행사로 정신없는 현장에서 선뜻 링크를 클릭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시험공부를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에서야 나는 그 링크를 클릭해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 링크를 클릭해보면 그저 프로그램이 취소되었다, 정도의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 예상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며, 글 한 번 읽고 오늘도 일단 시험공부부터 해야지 생각했다.


홈페이지8.jpg 파산 신청 공지가 올라와있던 홈페이지 링크

파산? 파산이라고?

이쯤되니 머리가 띵했다. 그저 프로그램 취소-환불이 아니라 파산?

더군다나 지금까지 배송지연이니 업체와의 문제라니 했던 것은 사실 모두 거짓이고 그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이 모든 금전적 절차가 지연되고 있었다는 토로까지.


차라리 법을 아예 몰랐다면 이 심각성을 조금은 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다시 시험공부나 하며 지낼 수 있었을까. 이미 오랜기간 법에 치여살았던 탓에 머릿속에선 빠르게 모든 가능성과 방향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환급은 어려울 것이고, 구질구질하고 소모적인 법적 다툼이 될 것이란 사실까지도.


법인 파산이었던만큼 다른 피해자가 존재할 것이라 예상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역시 이미 올라온 글들이 있었다. 미션캠프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차 현재 상황을 알리는 글들. 그리고 그 글 끝에 남겨져있는 피해자 공동대응 단톡방까지. 단톡방에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니 이미 인원은 10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베타 테스터로 모집하는 프로그램 인원이 대부분 30명 안팎이었는데, 1000명?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단톡방은 2000명이 넘어가고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피해자들의 분노와 당혹감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서로 오고가는 정보들 속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까지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2018년 무렵 이미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개인 파산이 이루어지며 컨셉진이 망했었다는 이야기.

12월 2일에 올라온 컨셉진 파산 신청 공지 하루 전까지도 사람들에게 신규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광고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이야기.

환급과 배송이 지연된 프로그램이 한 두개가 아니고, 그 사유도 제각기 다르게 전송되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를 따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어린 학교 동생이 생각났다. 나처럼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던 아이. 바로 얼마전에 시작한 새로운 출판 프로젝트에 신청했다던 아이. 자기만의 첫 출판 책이 될거라며 기대에 차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던 순수하게 오갔던 대화들이 가슴을 쿵 짓눌렀다. 떨리는 손으로 동생과의 채팅방을 찾았다.


'지영아, 자? 할 얘기가 있는데 조금 심각한 문제라, 전화 가능하니? 카톡보면 바로 연락해'




그 날 새벽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증거들을 모두 모아둬야 했고, 새벽 4시가 넘도록 홈페이지와 문자창,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노션페이지를 오가며 캡쳐하고 증거들을 분류했다. 이런 일이 처음일 동생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단톡방 안내와 신고 절차 등을 알려주며 ECRM 신고를 우선 마쳤다. 그 날도 난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수한 포기들을 해야했지만,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이 사건과 관련해서 포기해야할 일들이 참 많을 것이라는 것을. 피해자가 2000명이 넘어가는 이 상황에서 사건이 빠르게 진행될리 없으며, 파산을 신청할만큼 금전적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 내가 피해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낮으리라는 것도.


강의실에 가서는 수업을 듣는 대신 녹음기를 켰다. 그리고 국세청에 들어가 지금까지 신청했던 프로그램과 잡지들에 대한 현금영수증 미발행 신고를 해야했다. 수업이 끝나면 공동대응 단톡방에서 오간 글들을 읽고 진행 상황을 파악한 뒤 내가 해야하는 일을 정리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무료 법률 상담에 내가 어떤 것들을 물어봐야 하는지 질문지를 정리하고 관련 내용들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고 나면 녹음해둔 수업을 배속으로 들어가며 공부하고, 밀린 과제를 쳐내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일들에 하루가 며칠처럼 느껴지는 감각에 가슴이 갑갑했다.


내 인생은 나아지고 있는게 아니었던 걸까?


내가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은 적응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아무리 법에 대해 익숙하고 경험이 있더라도 법이란건 누구나에게 엮이고 싶지 않은 민감한 단어이고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고단했던 지난 날들을 모두 잊고서 어린 동생들과 공부만 하던 일상 속에 신고, 접수, 수사 착수와 같은 법적 용어가 일상 언어로 침투하는 경험은, 때로 그저 신고하지 않고 없는 돈이었던 셈 쳐버리는 걸로 모르는 척 해버리고 싶을 만큼 무겁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동생이 함께 걸려있었다. 나 하나 모른척하고 지나가기에는 내 개인의 문제 이상의 것이 되었다. 단톡방에는 우리와 유사한 내용의 사건들이 함께 공유되면서 환급형 프로그램 피해에 대한 사회 구조적 안전망 부실에 대해서도 성토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이런 어린 피해자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법은 감정을 다뤄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마음이었건 그건 사실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가 어떤 의도로, 어떤 마음에서 여기까지 왔건 그건 중요치 않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없었다면, 나의 이 기록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없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이후에도 이같은 문제로 또다시 생겨날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성실하게 신고하고 법적 대응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음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알리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리고, 일상의 미묘한 변화에 대해서 나는 조금 더 예민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반성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변화들이 내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들로 애써 무시해온 지난 날의 내 모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잡지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완료된 프로그램에 대한 문자가 늦어지던 어느 날. 배송이 지연된다는 문자가 왔던 날. 업체와 문제가 있다는 어느 날. 명단에 착오가 있어 늦어졌다던 날. 파편처럼 존재했던 장면들이 지금에 와서야 의미를 가진다.


자꾸만 핑계처럼 오는 문자들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 말들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조금의 어긋남쯤은 그냥 지나가고 싶었다. 믿고 싶다는 마음은, 때로 판단보다 앞선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그랬다는 것 역시도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내가 잃은 것은 그저 돈이었을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모습을 매일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분노가 생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허망하고 슬프다. 내가 오랫동안 사랑하고 애정해온 무언가에게 배신당한 듯한 그 참혹한 슬픔에 나는 분노보다 상실감이 더 컸다. 이제는 정말 컨셉진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누군가는 당장이라도 불태워 없애고 싶다고 하지만, 나의 고단하기만 했던 그 시절을 위로했던 무언가를 나는 그렇게 쳐내버릴 수가 없다. 이미 나에게는 깊게 각인되어버린 애정에 그저 쓰라릴 뿐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럴리가 없어'하며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도 큰 뒷통수였다. 그의 행위는 기망이었고, 나는 고소장에, 각종 언론에, 판결문에 미션캠프 사기 피해자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랑했던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이었음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모든 이별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딱 그만큼만 슬퍼하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면서.


이 글은 무언가를 다시는 믿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대신 다르게 믿겠다는 태도를 전하고자 했다. 아무런 징후없이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일들은 크고 작은 징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유심히 살피느냐 살피지 않느냐에서 차이가 있다. 처음 미션캠프 파산에 대해 검색을 할때 보았던 어느 블로그 글에서는 파산 소식이 알려지기 전, 폰지 사기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친구들과의 대화를 올린 것도 보았다. 환급금 형태로 미리 받는 참여 보증금. 그리고 반복되는 지연. 꾸준히 도착하는 신규 프로그램 홍보. 같은 내용을 보면서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질문과 멈춤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변화가 느껴질 때는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이유에 대해 질문하며 멈춰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것. 대부분 청년층으로 국한된 이번 미션캠프 사기 피해사건은 금방 사그라 들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치열한 법적 다툼을 진행하고 있어도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처음듣는 이야기가 되는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안다. 하지만 토익학원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환급금 형태의 학원 등록. 헬스장에 미리 선불금을 지급해두는 것, 그리고 최근에 있던 파트타임스터디 사건까지.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끊임없이 알리고 문제에 대해 지각해야한다. 사회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이것에 대해 질문하고 멈춰야 하는 때임을 인지해야한다. 침묵이 반복을 만다.


"잡지가 보이지 않던 그날이, 사실 모든 시작이었다"


기나긴 여정이 될 나의 다툼은 이제 시작이지만, 언젠가 이 기록의 종지부를 찍게될 날도 결국은 올 것이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질문의 기회로 남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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