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한국에서, 푸바오는 경쟁자가 없는 최고의 스타였다.
판다이기에 망정이지, 사람처럼 광고도 찍고 행사도 했다면 수익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녀의 중국행으로 수 달 전부터 팬들은 눈물바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 푸바오를 실은 차량 근처에서는 예상대로 팬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이 장면을 보며 일각에서는 "고작 곰 한 마리 때문에 오열하는 것이냐"며 어리둥절했고, 다른 쪽에서는 "이런 감성을 못 느끼느냐"라고 반문했다.
나는 양쪽의 말이 모두 이해가 간다. 다만 둘 사이 괴리가 크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중간 어디쯤에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다. 빅뉴스를 보고도 눈물 흘리지 않았던 우리 중의 누군가는, 어째서 푸바오와의 이별 앞에 그리도 서럽게 울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푸바오는 판다다.
그런데 이것은 종을 기준으로 한 분류다. 이런 분류는 불충분하고, 핵심을 비껴간다. 마치 연인이 "너에게 난 뭐야?"라고 물었을 때 "어. 너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우리에게 푸바오는 하나의 스토리다.
용인에서 태어나 꼬물이 시절을 지내고, 사육사와 장난치는 말괄량이 시절을 지나, 어느새 숙녀로 성숙한 판다. 눈앞에서 볼 수 없고, 직접 만질 수 없어도 우리는 그녀를 이미 안다고 느낀다. 정확히는 그녀의 스토리를 아는 것이다.
이 스토리가 푸바오라는 생명체의 모든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들의 모음이다. 푸바오만의 개성이 엿보이는, 사랑스럽고도 감동적인 순간들. 이런 편집이 없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푸의 먹고 자는 시간을 하염없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편집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푸바오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유쾌하고, 자신만의 시그니처 포즈도 있다. 또 무수한 팬이 있고, 그들의 일상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런 속성은 무엇과 유사한가? '아이돌'이다. 우리가 보는 '푸바오'의 본질은 실은 아이돌에 가깝다.
그렇다면 푸바오의 중국행은 무엇과 유사한가? 아이돌의 잠정은퇴. 기약 없는 이별. 이렇게 생각한다면 누군가의 울음도 어색하지 않다. 떠나가는 아이돌 스타 앞에서 팬들이 눈물짓는 일은 꽤나 자연스러우니까. 그 팬심에 공감하는 자는 같이 울고, 공감하지 못하는 자는 울지 않는다. 다만 "왜 우느냐"는 말은 적게 나올 것이다. 그 눈물의 맥락을 모두가 익히 알기 때문에. 취향과 애정의 차이에 따라, 각자 다르게 반응할 뿐이다.
이번 계기로 한 가지를 알았다. 사람이 아닌 것들도 아이돌이 될 수 있구나. 취향과 애착. 좋아하는 마음은 종을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