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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24. 2023

'동시대 관객'이라는 감각의 상실

그리고 <아바타> 시리즈 혹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의미에 대해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만나 이런 대화를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영화 봤어? 얼마 전에 개봉했던데." 

그러니까 '개봉 영화'가 유행을 하고, 그것을 주말 동안 봐야 대화에 끼어들 수 있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이런 대화다. 

"넷플릭스 그 시리즈 봤어?", "유튜브 그 영상 봤어?"


새삼 플랫폼의 부상을 짚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봉 영화'라는 개념의 몰락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아직 몰락이라 표현하기는 이른가? 하지만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지금의 개봉 영화는 더 이상 우리를 설레게 하거나 조급증을 느끼게 만드는 대상이 아니다. 

보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지금 영화관에 갈 필요는 없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VOD에서 만날 수 있는, 운이 좋다면 유튜브 요약으로도 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핫'하지 않다. 개봉 영화의 뉘앙스에서 느껴졌던 두근거림은 점점 옅어지고, 이제 그것은 '현재 상영 중'이라는 지시적인 의미로 바뀌어가고 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영화관의 몰락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온라인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기도 하고. 다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다리고, 주말 동안에 영화관에 달려가서 북적이는 틈새에서 그 영화를 겨우 본 뒤에, 다음 주 월요일에 그것에 대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일상은 사라질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다.  


기술 발달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와 만나는 시간이 다양해지도록 만들었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개봉 기간에 가능했던 만남이 이제는 개봉 기간, 영화관에서 내린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능해졌다. 같은 작품은 시간차를 두고 영화관, 유튜브, OTT, VOD로 관객과 만난다. 우리는 영화와의 만남을 가장 편한 시간까지 지연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대신 자유에는 늘 대가가 따르는 법. 그 대가로 우리가 지불한 것은 바로 '동시대 관객성'이다.


같은 시기에 관객으로서의 체험을 공유하며 함께 호흡하는 일. 갓 나온 밥을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듯이, 막 나온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관람하는 일. 모두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우리가 같은 시대의 관객이라는 점을 감각하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질 것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까지는 여기에서 짚기 않기로 한다. 다만 꼭 챙겨 보아야 하는 핫한 콘텐츠로서의 '개봉 영화'는 OTT 오리지널, 유튜브 인기급상승 동영상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미안하지만 슈퍼 스타로서 개봉 영화의 시대는 저물었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최근 뒤늦게 <아바타: 물의 길>에 대한 글들을 몇 편 봤다. 그 글들은 모두 영화의 기술력을 상찬 하거나 텍스트의 빈약함을 비판하고 있다. 이 영화의 CG가 얼마나 대단한지, 혹은 그것의 서사가 얼마나 지루하고 태도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내가 이전에 썼던 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글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은 모두 <아바타> 시리즈의 가장 큰 의미를 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전 세계 관객들을 동시에 영화관에 불러낼 수 있는 영화는 손에 꼽는다. 그 가장 선두에 아마도 <아바타> 시리즈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메가히트를 칠 수 있는 이유는 적당히 통속적이고, 대중에게 먹히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들어가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대단히 훌륭한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기획이 실제 영화로 탈바꿈해서 영화관에 걸리기까지, 거기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거대한 야심과 집요함이 작동하고 있다. 


흔치 않은 확률들이 거듭 포개어지며 마치 행운처럼 <아바타> 시리즈는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의 생태계에서 전 세계 관객들을 하나로 묶는, '동시대 관객성'을 체험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마찬가지다. 이제 그것들의 의미는 단순히 히트를 노려 수익을 거둬들이는 상품에 머물지 않는다. 제작자들이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런 영화들은 동시대 관객성을 지키는, 전 세계 대중들을 상대로 우리가 같은 영화로 호흡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흔치 않은 작품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구운몽'이라거나, 우리가 고전으로 숭배하며 공부하는 많은 작품들이 태어났을 당시에는 통속 소설이었다고 들었다. 작품과 장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블록버스터 대작도 그렇다. 점차 희미해지는, 어쩌면 영영 잃어버릴지 모를 '동시대 관객'이라는 감각. 그것을 한 번씩 일깨워 우리 앞에 돌려놓는 작품이 우리가 흰 눈으로 보던 영화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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