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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02. 2023

챗지피티 시대의 비평

결점을 선택하는 인간들

챗지피티(ChatGPT)에게 영화 평론을 시켜봤는데, 아직은 영화 줄거리와 촬영 기술, 관객의 반응을 요약해주는 수준이라 약간 김이 식었다.


하지만 AI가 본격적으로 비평을 쓰는 일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영화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만 곧 AI가 동영상도 읽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물론 형식적인 글쓰기에 비해 복잡하고, 수요도 많지 않으니 비교적 더디게 발전하겠지만.


AI가 아이디어도 주고, 글도 써주고, 윤문까지 해주는 시대에서 비평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글쓰기 전반에 대해 적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지루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제, AI 시대의 글쓰기. 이와 관련해 다음 글만큼 우아하게 독자의 생각을 환기시키는 글을 아직 보지 못했다. 허문영 평론가가 한겨레 지면에 쓴 '바둑과 스타일'이라는 칼럼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6974.html


이 글에서 허문영 평론가는 답을 내고 있지 않지만 '스타일'을 강조한다.


"누군가는 남들이 가본 길을 택하지만 또 누군가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다. 후자의 선택이 스타일을 낳는다."

"어떤 길도 불확실하고 결함이 있으므로, 선택의 기준은 효율성일 뿐만 아니라 결함이기도 하다. 어떤 결함을 짊어지고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이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것을 빚어낸다. 그러므로 스타일의 중핵은 효율성이 아니라 그 결함에 있다."

"스타일은 ..(중략).. 인간의 단독성이 새겨진 어떤 몸짓이고 어떤 형식이다."


한 인간의 선택한 아름다운 결함의 총체가 바로 그의 '스타일'이 된다. 그렇다면 스타일이야말로 AI가 쫓아올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AI는 인간이 결함을 선택하는 방식, 그러니까 스타일 조차 학습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여기에 나의 생각을 조금 덧붙이고 싶다.

허문영 평론가가 언급한 스타일에 관한 말들에서 우리가 지금 주목할 부분은 '인간'이다. AI가 스타일마저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시간이 와도 우리가 궁금한 것은 다름아닌 다른 인간이다. 결점을 감수하고 스타일을 취하는 인간들. 우리에게 진짜 흥미로운 것은 다른 인간들이 '결함'을 감수하며 취하는 선택이다. 형식적인 문서들은 아마도 AI가 완벽히 작성하는 시대가 오겠지만, 창작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그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므로, 역설적으로 AI는 꽤 오랫동안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기계가 더욱 인간에 가까워진 시대, 인간에게 중요해진 면이 결함이라는 것이 우습긴하지만. 우리 시대가 정의 내리는 인간은 아름다운 결점의 연속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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