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예전에 쓰던 수첩을 뒤적이다가 글씨체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언뜻 보면 잘 썼고 언뜻 보면 악필인 특유의 느낌은 그대로다. 하지만 예전의 글씨체는 마치 10년 전 사진 속 내 얼굴처럼 비슷한 듯 다르게 느껴졌다.
우선 또박또박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지금보다 기강이 잡힌 글씨체다. 마치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있는 학생처럼. 그래서인지 묘하게 어리고 귀여운 느낌이 있었다.
반면 지금의 글씨체는 편하고 물 흐르는 듯했다. 이쁜 옷보다 편한 옷을 선호하는 지금 내 스타일과도 비슷했다. (이 글에다 예전에 쓴 글을 사진으로 찍어 직접 보여주고 싶지만, 도저히 내용이 오글거려서 그럴 수 없었다)
하긴 초등학교 때 글씨체가 지금과 완연히 다른 것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것은 끊임없이 나와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글씨체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은 근거 없는 편견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순간부터 글씨를 쓰는 일이 지극히 적어졌다. 나만의 필체, 스타일에 대한 생각도 별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제 주인의 모습을 묘하게 닮은 글씨는 매력적이다. 이런 것이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