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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07. 2024

반갑고도 낯선 권태

한산한 일요일 오전, 침대에 누워있다 문득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심하다. 심심한 넘어 권태롭다. 그러다 혼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세상에, 이런 감정느껴 본 지 얼마만인가?


불현듯 왕림해 주신 '권태로움'님께 송구스러웠다. 귀하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나는 미라클모닝도 못하고 미라클통장도 못하고(다른 의미로 미라클 하긴 하지만) 갓생도 못살고 있는데? 때는 당연했던, 지겨웠던 감정 앞에서 나는 쭈굴거렸다.  


한 5년 전쯤인가. 친구가 내게 물었다.

요즘 별 문제없고?

문제? 있지.

뭔데?

지루해. 갑갑해.


말하고 곧 웃음이 터졌지만, 솔직한 심경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충분히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부러워한다. 아아, 5년 전의 나야. 정말 부럽구나! 인생의 문제가 권태밖에 없다니. 대체 얼마나 팔자가 늘어진 거니? (아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난다면 서로가 싫어서 뒷걸음질칠 것이다. 한쪽은 인생 다 산 척하는 꼰대라고, 한쪽은 인생 덜 산 어린애라고 여기며 한심해하겠지.)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다시 내게 심심이가 찾아왔을 때, 나는 한 때 친하게 지냈으나 왕래 한 번 없어 잊고 살다가 느닷없이 길에서 마주친 동창을 보듯 뚝딱거렸다. (어머 너무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감정도 자주 교류해야 친해지나 보다. 그러나 친구가 그렇듯, 약간의 어색함을 풀고 나니 이내 반가웠고 기분이 들떴다.


묘하다. 편안함을 지나 심심함을 느끼게 되기까지 나는 많은 것을 버렸고, 지금도 길을 찾고 있다. 시간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다. 하지만 방황하는 길에서 잊었던 이와 마주치는 일은 선물 같은 기쁨을 남기고 고단한 마음을 도닥인다. 한 때는 떠나고 싶었고 이제는 되찾고 싶은, 그 감정과의 조우오늘은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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