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더 이상 명절에 한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시기에 일상복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다. 그것은 '친척'이라는 옷이다.
친척의 얼굴을 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하고도 편안한 사람이 되어 준다. 그것은 얼마간 가식적이지만 그만큼 따듯하다. 이 시기에 우리는 자신의 개성을 잠시 내려놓고서 공동의 뿌리를 확인한다. "넷 째네 딸래미" 같은 투박한 용어로 규정되는 정체성. 하지만 괜찮다. 원래 소속감은 투박함 위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평소의 우리가 스스로의 색을 진하게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명절에 우리는 나와 닮은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나만의 색을 연하게 희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사소하고도 어색한 노력 위에 '친척'이라는 관념이 형성되고, 그 위로 보이지 않는 핏줄이 흐른다.
추석에 나는 내가 가진 특성이, 기질이, 어떤 사람들 사이에 꽤 많이 퍼져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는 그것을 "닮았다"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니까 추석은 우리의 평범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스스로 쌓은 웅장한 성에서 내려와,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한 이들을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명절이 불편한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의 나는 서로를 동여맨 '핏줄'이라는 줄에 잠시 몸을 기대어, 편안함을 떠올린다. 일상에는 잘 없는 감각. 그래서 요즘은 추석이 제법 반가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