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스브스 프리미엄'에 기고한 글
※ 이번 글은 배우를 중심에 두고 쓰고 싶어서 강동원 배우를 주제로 말랑말랑하게 써 보았다. 그의 장점이 영화에서 어떻게 발휘되었는지에 대하여. 또 강동원, 정해인 같은 꽃미남 배우들은 이상하게도, 뭇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애정을 받는 미남의 포지션에서 벗어나서, 남성 무리 사이에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성적 긴장감이 덜한 곳에서 오히려 새롭고 편안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점에 대해 짚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전,란>은 그간 OTT가 제작한 한국 영화 중에서 이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으로서 사극 액션, 강동원·박정민을 투톱으로 하는 연기 앙상블 등 재미 요소가 풍부하게 마블링되었다는 평가다. 또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 굵직한 배우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영화에 대한 반응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강동원에 대한 높은 평가다. 사실 <전,란>은 그가 연기하는 '천영'을 주인공으로 진행되는 영화이므로 그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강동원은 주연으로의 관심 그 이상을 받았다. 최근 그가 출연했던 <설계자>,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브로커>와 비교해도 그렇다.
이 영화가 강동원의 파격적인 면모를 끌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치 맞춤옷처럼 그에게 딱 맞는 작품을 입은 느낌만은 확실하다. <전,란>과 강동원, 둘 사이좋은 궁합이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이제는 스타이자 배우로 자리 잡은 강동원이 유독 <전,란>에서 빛날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강동원은 사극이 잘 어울린다. 다만 엄격한 고증을 거친 역사물이 아니라, 픽션 사극에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사극 돌풍을 다시 일으켰던 <고려 거란 전쟁>은 강동원이 뛰어놀기 적합한 놀이터가 아니다. 그에게 잘 맞는 사극은 판타지가 약간 가미된 것이다.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살았다는 전설적인 남정네. 그런 역할과 잘 맞는다.
<전,란>은 강동원의 이런 매력을 정확히 포커싱한다. 푸른 도포 자락을 흩날리며 싸우는 '청의검신'. 웬만한 사람은 소화하지 못했을 캐릭터를 그는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도포의 푸른빛은 너무 도드라져 주변과 융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강동원은 이 색을 아름답게 흡수하며 그 이질적인 느낌을 판타지의 단계로 승화시킨다.
강동원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형사 Duelist>, <전우치>, <군도:민란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모두 픽션 사극에 속한다. 그러니까 강동원은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먼 시간대를 배경으로 뭇사람들이 품었을 머릿속 환상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는 배우인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판타지를 연기하는 데 제격인 배우다.
이것은 강동원이 <늑대의 유혹>이나 <검은 사제들>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물론 이 영화들에서 그의 연기도 준수하다. 그러나 두 작품이 모두 판타지에 기반한다는 점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인터넷 소설이든 오컬트든, 그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했고 장기를 충분히 발휘하며 성공을 거머쥐었다.
강동원이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외양 때문이다. 큰 키에 작은 얼굴, 여전히 소년의 떨림을 담은 큰 눈이 판타지의 감성을 머금고 있다(강동원의 외모에 대한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생략하겠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여러 연기 중에서도 특히 감정을 담아서 조용히 바라보는 연기를 잘하는데, 이 표정은 긴 여운을 남긴다. 게다가 강동원은 말의 속도도 미묘하게 느린데, 이것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며 그의 비현실성을 증폭시킨다.
다음으로 <전,란>에서 강동원이 돋보였던 이유는, 그가 남자 배우와 합을 맞췄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수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동성과 맞붙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배우들이 있다. 강동원도 그러한 경우다.
작품 속에서 여성과 함께 있을 때 강동원의 역할은 주로 '매력적인 남자'에 집중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배우에게 일종의 제약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남성 무리 사이에 있을 때 그는 단순히 미남을 벗어나 다양한 얼굴을 선보인다. 그는 어딘가 수상하지만 마음 가는 동생이고(<의형제>), 강한 신념을 품은 파리한 얼굴의 사제(<검은 사제들>)다. <전,란>에서도 박정민 배우와 합을 맞추며, 그는 거칠지만 노련하고 속 깊은 사내로 변모했다.
이와 같은 케이스로 '정해인'도 꼽을 수 있다. 물론 그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최근 필모그래피를 볼 때, 정해인은 남성 무리 사이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는 <서울의 봄>에서는 비중은 크지 않았으나 눈에 띄었고, <D.P.>에서 전혀 다른 매력을 선보이다가 <베테랑 2>에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멜로에 적합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군대, 경찰서를 배경으로 연기할 때 자신만의 개성을 편안하게 뿜어낸다.
<전,란>에서 박정민을 비롯해 정성일, 진선규 등 색이 뚜렷하며 연기력 좋은 배우와 맞붙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강동원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앞에서 강동원은 각각 애증 어린 동무, 신비롭고 재기 넘치는 무사, 믿을 만한 장수로 분할 수 있었다.
자신과 꼭 맞는 장르, 진면모를 끌어낼 상대 배우. 강동원이 <전,란>에서 유독 호평받은 이유는 결국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배우에게 통용되는 원칙이다. 그런데 사실 말이 쉽지, 이것을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만큼 성사되었을 때 쾌감도 크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꼭 맞는 작품을 만나 훨훨 날아다니는 배우를 보는 기쁨도 크기 때문이다. 어려울 줄 알면서도 자꾸만 영화계 '환상의 커플'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문 https://premium.sbs.co.kr/article/QKmSE1Hy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