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범인은 바로 너>가 취하는 새로운 포맷
유재석과 넷플릭스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예능 <범인은 바로 너>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컨텐츠도 재미있게 볼 만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프로그램이 취하는 흥미로운 형식이다.
예능과 시리즈물 드라마의 만남
<범인은 바로 너>는 고정 멤버들이 사설탐정이 되어 매주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컨셉 하에 진행된다. 매주 새로운 게스트들이 출연하며, 하나의 사건마다 중심이 되는 컨셉이 있다. 이를테면 '예고 살인', 혹은 '뱀파이어'가 컨셉인 사건을 해결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나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한 뒤, 매 화마다 흥미로운 사건이 진행된다는 점은 '007 시리즈'나 '셜록 시리즈'와도 닮았다. 이런 점에서 <범인은 바로 너>는 일단 드라마, 그중에서도 시리즈물의 성격을 띤다.
물론 이런 점은 <무한도전>이나(무한상사 시리즈) <런닝맨>(유임스본드), 혹은 <아는 형님>(모두 고등학교 친구인 컨셉) 등 여타의 예능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바로 너>의 경우 눈에 띄게 출연진들의 예능 이미지를 프로그램 안에 끌고 들어오길 꺼려한다는 점에서 더욱 짙게 드라마의 성격을 띤다. 유재석은 런닝맨에서 이광수가 공고하게 구축한 '배신자'의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으며 본인 스스로도 '유반장' 혹은 '얌체' 이미지를 피하려는 듯 보인다. 김종민의 어리버리 이미지도 그가 프로그램 내에서 실수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언급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주 빠르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 플레이를 시도하는 다른 예능에 비하여, <범인은 바로 너>의 출연진들은 이런 행위를 매우 절제하며 프로그램 속 캐릭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차라리 대본의 설정을 중시하는 배우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범인은 바로 너> 속의 세계는 꽤나 강하게 세계관, 혹은 스토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출연자들은 갑작스레 등장하는 게스트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실명을 부르거나 인사를 하지 않고, 그들을 철저히 스토리 속 캐릭터로서 대한다. 또한 출연자들은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며 스토리를 진행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범인은 바로 너>는 방영 전 자주 비교되었던 <크라임씬>과 확실한 차별점을 보인다. 똑같이 탐정들의 사건 해결이라는 설정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크라임씬>은 정적인 상황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자율적으로 단서를 취합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범인은 바로 너>는 끊임없이 스토리를 진행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스토리의 진행과 완성'이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주요한 뼈대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 프로그램이 가진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속성들, 요컨대 예능인들의 출연, 웃음 유발 장면, 캐릭터 플레이들을 볼 때 여전히 예능으로서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내가 본 '예능'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 중에 가장 예능과 드라마의 중간, 그 경계에 위치해 있다. ('무한상사' 시리즈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것은 애드립이 가능한 콩트, 즉 예능의 영역으로 분류하여야 할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이것이 추리 해결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범인은 바로 너>에는 매주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 혹은 방탈출 카페에서 나올 법한 수준의 문제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출연진들은 그리 녹록지 않은 문제들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것이 시간 관계상 짧게 편집하는 연출의 탓인지, 출연진들에게 주어지는 대본이나 힌트의 덕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시청자인 내가 접하는 영상 안에서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꽤나 간단하게 보인다. <문제적 남자>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끈질기게 골몰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범인은 바로 너>의 문제 풀이 과정은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그들은 약간의 고민 후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고 즉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이것은 관찰 예능의 형식 안에서 드라마를 진행시키는 것에 가깝다.
새로운 포맷이 주는 새로운, 혹은 애매한 감흥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로서 나의 위치도 드라마와 예능의 중간 그 어디쯤에 위치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듯 그들의 분투를 보아야 하는지, 혹은 드라마를 보듯 그들의 연기와 스토리를 감상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매번 무의식중에 고민하게 된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자신의 위치를 모호하게 설정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저 출연자들의 재기와 영상의 비주얼, 그리고 스토리의 반전을 보며 즐거워할 수도 있다(실제로 지금 그러고 있음). 그런데 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공을 들인 듯한 <범인은 바로 너>가 그런 어중간한 포지션 때문에 얼마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프로그램의 추리 해결 과정이 제공하는 쾌감은 현실에서 누군가 문제를 풀었을 때의 짜릿한 쾌감도, 드라마의 누군가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을 때 안전한 거리에서 그것을 감상하는 편안한 쾌감도 아니다. 그것은 양 진영 사이의 어떤 미묘한, 혹은 애매한 감흥에 가깝다. 아마도 그것이 <범인은 바로 너>가 화려한 출연진과 훌륭한 세트장, 나쁘지 않은 스토리를 장착하고 홍보까지 빵빵하게 하고서도 예상만큼의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드라마 예능', 성공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새롭게 도전하는 이러한 포맷, 즉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에 위치하며 둘을 적당하게 접목시키는 포맷이 과연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대강의 예상은 할 수 있겠다. 중간에 위치한 것들이 흔히 접하는 반응은 '새롭다' 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다'다. 지금껏 보았을 때 나의 판단으로 이 포맷은 적어도 아직은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욱 많다. 그러나 <범인은 바로 너> 자체는 어느 정도의 인기를 얻으며 지속적으로 방영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의 포맷 외에 출연진, 스토리, 비주얼 등의 요소들이 꽤나 훌륭하고 그 총합인 결과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리 해결 과정에서 어떤 방식의 쾌감을 전달할 것인지에 대하여 지금보다 더욱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지금 <범인은 바로 너>가 시도하는 포맷은 대략 드라마 예능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는 유재석이 넷플릭스의 손을 잡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런 포맷의 참신함에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생소하면 어떻고 애매하면 어떻겠는가.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다. <범인은 바로 너>가 취한 형식이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며 예능계의 새로운 포문을 열 수 있을지 나 역시도 기대를 갖고 계속 지켜보고 싶다. 만일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앞으로 드라마의 스토리를 따라서 제한적인 예능극이 펼쳐지는 형식의 프로그램들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