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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09. 2018

<하트시그널 시즌2>는 왜 유독 흥행했을까

※아래의 모든 이야기는 '출연자들의 실제 모습'이 아닌, 프로그램 속 '가상의 캐릭터'에 대한 언급임을 강조하고 시작합니다.



 그 매력적인 삼각형

내게 <하트시그널2>의 방송보다 재밌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초반에 <하트시그널2>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요인은 영주 현주 현우의 구도에 있었다. 그들은 (현실의 모습과 무관하게 캐릭터상) 아름답고 쿨한 커리어우먼, 귀엽고 애교 많은 여대생, 그 사이에 나타난 매력남의 캐릭터를 그대로 체화한다. 이 전형적인 캐릭터와 삼각구도야말로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삼각형이라 할 수 있다. <하트시그널2>는 초반부터 천운처럼 여자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와 구도를 얻었으니 (마치 드라마의 작가가 알고 보니 김은숙인 것처럼) 뜨거운 인기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짜증 나는,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이분법

여기 더하여 <하트시그널2>에는 가장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이분법 하나가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초반에 영주와 현주는 '감정에 솔직하고 털털한 여성'과 '감정 조절에 능한 여성'으로 그려졌는데, 이런 구도는 우리로 하여금 '곰과 여우', 혹은 '강아지와 고양이'라는 오래된 스테레오 타입을 연상케 한다.(특정한 출연자가 어떤 타입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 이 얼마나 지겹고 한심한 구분인가. 그러나 오래된 것은 힘이 센 법이다. 그 단순하고도 매력적인 이분법은 여성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키면서도(여자를 타입화 하지마) 어쩔 수 없이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나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여기에 결정적으로 불씨를 지핀 것은 현우라는 남자다. 재밌는 것은 현우의 등장이 인기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의 등장과 유사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까칠하지만 잘생겼고, 말수는 적지만 적당한 호감 표시로 여자들을 설레게 한다. 그렇게 두 여자는 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껴서 경쟁하게 된다. 그렇다. 경쟁. 이 역시도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지겨운 소재인가. 그러나 지겨울 땐 지겹더라도 질 수는 없는 법이다. 경쟁 구도는 시청자가 출연자에게 더욱 강하게 이입할 동력을 제공한다.   


물론 초반의 삼각구도나 이분법도 지금은 많이 흐릿해졌다. 캐릭터는 풍부하고 복합적으로 변했고, 애정의 화살표는 복잡하게 얽혔다. 그러나 사람이 여럿이면 연애 스타일도 제각각인 법. 출연자들의 행동 방식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닮은, 혹은 자기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편에 서서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기에 어느 출연자를 응원하는 일은 자신의 연애관을 옹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출연자들이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현실 속 사람이지만 캐릭터를 통하여 소개되고, 유형화되며 대상화된다. 시청자들은 자신의 연애 경험을 거쳐서 그 캐릭터를 대면하게 되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나 반감은 현실 속 인물에게 쉽게 번진다.


아이돌 팬덤처럼, 스포츠팬들처럼

경쟁하는 버라이어티의 팬덤은 흔히 아이돌 팬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데, <하트시그널2>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좋아하는 출연진들에 따라 서로 반목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며, 약간의 정치를 하기도 한다. 제작진이 자주 욕을 먹는 것도 큰 팬덤을 가진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다. 일반 프로그램은 실수를 해도 시청자들이 큰 관심이 없는 반면, 이런 버라이어티는 제작진의 실수가 내가 응원하는 이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팬들은 호되게 대응한다.


또한 프로그램은 스포츠와 유사하게 소비된다. 스포츠팬들은 자기 팀을 응원하면서 때론 열광하고 격하게 흥분한다. <하트시그널2>에 대한 열기도 연애라는 경기장에 입장한 우리 편 출연자에 대한 열광에 가깝다. 물론 경기가 끝났으면 집에 가야 하듯이, 방송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출연자를 보며 캐릭터를 넘어선 현실의 인물을 평가해선 곤란하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실 이런 구분은 쉽지가 않다. 1호, 2호로 부르던 <짝>과 다르게 이곳의 출연자들은 이름도 본명을 쓴다. 게다가 연애 버라이어티의 제작진들은 대부분 이중성을 보이는데, 뜨기 전에는 '리얼함'을 강조하며 감정이입을 유도하다가 뜨고 나면 '방송일 뿐'이라며 태세를 전환한다. 이런 이중성은 시청자에게도 보인다. 우리는 '리얼한 감정'을 좋아하는 동시에, '이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방어벽을 침으로써 지나친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때문에 연애 버라이어티는 늘 가상에 발을 대고(이거 다 방송인 거 아시죠!) 현실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며(근데 얘네들은 진짜로 썸을 타요!) 아슬아슬한 선을 밟게 된다.


여우논쟁

재밌는 게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에 대한 욕으로 통용되는 표현 중 하나는 "여우"다. 여우. 그것은 한국 여자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악역 같은 것이다. 근데 악역에도 빌런도 있고 다크 나이트도 있듯이, 여우도 욕인 동시에(여자랑 남자한테 하는 행동이 다르네?) 칭찬도 된다(여자로서 너의 매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팬덤은 여초이므로 여자를 향해 보이는 행동이 중요해지고, "여우"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통하며, "여자들이 싫어해봤자 남자들은 좋아함ㅇㅇ" 같은 표현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다 둘러본 게 아니라서 틀릴 수도 있음).


여우와 대비되게 칭찬으로 통용되는 표현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서나 좋은 말이지만 특히 이 프로그램 안에서 하나의 덕목으로 통한다. 이런 표현은 최근에 유행한 "걸크러쉬"와도 연결되는데, 결국 전형적인 여성성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쟁취하는 주도적이고 멋진 여자를 의미한다. -잠시 딴 소리- 사실 여우도 어떤 의미에서 자기 사랑을 쟁취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여우와 걸크의 문맥적인 차이는 '솔직함'에 있다. 이 차이가 왜 여자들에게 중요하냐면, 걸크가 내 썸남을 좋아하면 대비하고 경쟁할 수 있지만 여우가 좋아하면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내 남편 뺏어가는 여우 같은 첩"에 대한 오랜 공포를 공유하며, 시간이 지나서 옅어졌다고 해도 아직 그 정서는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트시그널>의 경우 시즌1,2를 불문하고 늘 여우는 악역이고 걸크는 주인공이며, 출연진들의 팬덤은 서로 "얘가 여우다! 아니다 쟤가 여우다!" 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논쟁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런 논쟁 속에서도 가치 있는 논의를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꽤 나이 든 여성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자는 여우짓 좀 할 줄 알아야 돼"라던가 "여자는 곰보다 여우여야 돼"라는 식의 말을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마 여성들의 지위가 종속적인 시대일수록 여자들의 우정은 쓸모없고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은 중시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달 여의 생활만 공유하는 여자 출연자들을 지켜보며 걸크와 여우를 구별하는 시청자들의 논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남자를 향한 감정을 긍정하면서도 여자들 간의 우정이나 예의를 이야기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아닐까. 좀 오버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출연자의 행동이나 티비 속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로 그쳐야지, 출연자에 대한 정의 내림으로 이어져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여우짓이 여자의 덕목"인 것은 싫으나 (남녀 불문하고) 여우짓 자체에는 사실 거부감이 없으며, 그래서 여우논쟁이 내게 더욱 흥미롭게 보인 측면도 있다.

여우와 걸크의 사이. <하트시그널2>는 의도치 않게 지금의 여자들에게 중요한 하나의 틈새를 펼친 셈이다.   


<하트시그널>, 부흥기를 즐겨라

앞서 언급했듯 <하트시그널2>는 지금 인기 있는 캐릭터, 인기 있는 구도, 매력 있는 출연진, 핫한 이슈까지 모두 쟁취하며 리즈시절을 맞았다. 그런데 과연 이 인기가 얼마나 지속이 될까? 굉장히 미안하지만 나는 시즌2가 최대 부흥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한 포맷의 버라이어티는 유통기한이 짧으며, '리얼' 버라이어티의 경우 그 기간은 더 짧아진다. 시즌3만 되더라도 출연자들은 방송에 비치는 모습을 의식할 확률이 높다. 이것은 출연자들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그들이 이미 방송을 보았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순수하게 드러나는 일반인들의 감정을 관찰하는 것이 핵심인데, 시즌2가 초대박을 친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한 출연자들을 찾으려면, 제작진이 직접 티비를 안 보는 일반인들을 골라내는 정도가 아니라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것이 최선일까. 다양한 캐릭터의 출연자들을 찾고, 포맷을 조금씩 수정하는 것(출연자들이 간파하지 못하게)은 당연하게 이어질 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리얼한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리얼은 양날의 검이다. 몰래카메라가 사라진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게다가 이제 리얼은 트렌드도 지났다. 우리의 현실과 닮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간혹 스쳐가는 감정을 바라보는 것. 그런 은은한 태도가 프로그램의 수명을 연장시킬 것 같다. 혹은 그냥 짧고 굵게 가는 것도 멋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하트시그널>에게도, 이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부디 리즈시절을 마음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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