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12.3. 계엄 이후 우리나라 '정치·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데, 내가 볼 때 '문화' 역시 그에 못지않게 나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단순히 시사회 행사가 취소되고, 개봉 영화가 관심받지 못하는 단편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한국땅에서 이뤄지는 모든 논의는 계엄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고,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서 다른 이슈에 대한 관심을 몰아낸다.
이것이 불가피하고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을 알지만,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문화는 눈치 없는 친구처럼 눈총을 받거나, 알아서 입을 다물기 일쑤다. 정치·경제가 뒤로 퇴보한다면, 문화는 존재감을 잃은 채 저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지난 화요일 밤, 예전처럼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지, 그것을 보아주는 독자들은 여전할지를 생각했다. 다행히 고민은 몇 시간 만에 그쳤으나, 주변을 감돌던 냄새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문화는 난세의 아픔 또한 흡수하며 성장할 테지만, 한동안 주춤대고 뒤켠으로 물러나며 그 토대마저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우리는 커다란 혼란을 극복할 과제를 함께 지게 되었고, 거기에는 국가적 혼돈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이 떠안은 통증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회복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대의를 생각하느라 사랑하던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을 잊지 않으면서 압도되지 않고, 피하지 않으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우리는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