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칭찬은 자주 평가절하된다. 그건 아마도 '착하다'는 속성이 노력 없이 얻어지는 성격에 불과하다는 편견과 관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착하다는 소리를 듣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애는 착혀~" 할 때의 그 '착하다' 말고, 정말로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 말이다.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그렇다. 어릴 때야 선생님 말만 잘 들어도 칭찬을 듣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화를 마친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사려 깊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타고난 재능에다 숙달된 기술까지 갖출 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일단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네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일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어느 정도 타고나는 영역이다. 유전자와 유년기 성장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평소 '공감 능력은 재능'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적어도 지금까지 공감은 그닥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공감 능력이 큰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공감력이 학력만큼이나 경제적으로 중요해진다면, 재능이 좌우하는 이 엄청난 통곡의 벽 앞에서 울음 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숙달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불편할 만한 상황을 캐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순간 자연스럽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어야 하며, 그걸 적시에 행동으로 옮길 정도의 판단력과 실행력도 필요하다. 이 기술이 연마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기술 없이 좋은 마음만 가진 사람은 어릴 때는 착한 아이로 불렸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무해한 병풍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이나 타이밍을 파악하는데 서투르기 때문이다. ... 내 얘기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 외모가 훌륭한 사람만큼이나 착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높게 이뤄줘야 할 것 같다. 재능과 기술이 합쳐진 종합 능력이 아닌가. 어휴 근데 나는 못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