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우열은 생각보다 자주 바뀐다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가끔씩 자기 힘을 믿고 주변을 함부로 대하는 이와 마주친다. 업계에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는 이가 무례를 저지르면 그 행동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무례함은 뻔뻔하게도 고개를 바짝 들고 웃으며 스쳐 지나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 무례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도, 마치 함께 모욕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든다. 감정의 오지랖일까. 그 사람이 특정인을 무시한 것을 넘어, 우리가 함께 지키고자 노력하는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침범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 현장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감정을 씻어내기 위하여 이것저것 노력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마치 실수로 잔뜩 뿌려버린 향수처럼 내 몸을 한참 동안이나 맴돌다 옅어진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결국 자기 행동의 대가를 돌려받게 된다. 권선징악 같은 낭만적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관계의 우열은 생각보다 쉽게, 자주 바뀌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힘이 세도, 약한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 하나를 들고 있으면 그는 나의 위에 쉽게 올라선다. 언제 어떤 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또한 문화계는 지금 플랫폼과 AI, 미세 트렌드의 영향으로 격변의 시대를 맞았다. 무시하던 누군가가 어느새 성공하여 힘, 정보, 인맥을 갖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또한 무시와 무례는 흔히 아래로 향하는데, 이들은 언젠가 세대교체를 통해 정점에 오른 뒤에 나의 과거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배려 없이 행동하며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흘러넘치는 물줄기를 손으로 막으려는 것처럼 부질없다.


어쩌면 내가 정말 기분이 나쁜 이유는,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그 상황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의 아둔함과 비겁함이 싫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작지만 단단한 인간 보호구역을 만들고 싶어진다. 그것이 글쓰기 공동체든, 영화 공동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사람이었겠지. 오늘도 나부터 잘해야겠다는 똑같은 결론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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