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별 분석 + 이 영화의 주제는
※ 장면 별 분석.
중요한 거 다 써서 좀 길어요.
그래도 작품 해설은 이 글로 끝입니다.
※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3부로 나눠져요.
1부 -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의 등장
2부 - 집결지로 향하는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3부 -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와 재회하는 밥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밥의 성장영화'고, 그의 변화를 기점으로 각 파트가 나뉘기 때문이죠.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얘기해 보죠.
양 극단에 있는 퍼피디아와 록조(숀 펜). 하지만 이들이 통한다는 것 느끼셨나요?
둘은 처음 만날 때부터 스파크가 튀고, 구금 장면은 성행위를 연상시킵니다. 이들의 성적 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첫 장면을 통틀어 PTA가 말하려는 바는, 혁명은 권력과 붙어 변절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 때문에. 쾌락을 거부하지 못해서. 이것이 딸에게 말하지 않았던 부끄러운 '역사'이자 '진실'이죠. 우리 모두 목격했지만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는 보지 못한 비밀. 이걸 이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퍼피디아는 록조에게 어쩔 수 없이 접근한 게 아니에요. 둘은 서로 닮았고 끌립니다. 특히 파워를 성적으로 분출하고 즐기는 성향이 그렇습니다.
퍼피디아는 작전이 성공할 때마다 밥에게 애정표현을 해요. 무력과 성적매력을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도가 좀 과해요. 폭탄이 터질 때조차 관계하자고 조르니까요.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PTA) 영화에서 이런 성향은 늘 위험요소입니다.
병원에서 작전하기 전, 밥은 퍼피디아에게 폭탄 뇌관 제거법을 알려줘요. 이때 퍼피디아가 자기 몸의 은밀한 곳을 만지작거립니다.
이는 퍼피디아의 몸이 곧 폭탄임을 의미해요. 강력하지만 위험한 무기. 그렇다면 '병원에서 제거해야 하는 것' = 뇌관 = '병원에서 마주친 록조' 이겠죠. 그녀는 작전에 성공하지만 뇌관은 제거하지 못하고, 이는 파국의 씨앗이 됩니다.
록조는 "나는 모자와 총을 원해"라고 말합니다. 권위와 힘을 상징하죠. 하지만 둘의 관계 장면에서 모자를 쓰고 총을 든 채 리드를 하는 건 퍼피디아예요. 둘의 관계 직후 퍼피디아가 발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총은 남근을 의미하고요.
이건 퍼피디아가 록조를 제압하며 관계가 이뤄졌음을 의미합니다. 록조가 "역으로 강간당했다"고 표현한 건 엄살이 아니죠. 다만 영화는 그가 이걸 원하고 즐겼음을 보여줍니다. 남성성에 집착하는 록조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놀리는 것이죠.
재밌는 장면이 있어요. 퍼피디아가 "흑인 여자 좋아해?"라고 묻자 밥은 "내가 흑인 여자 좋아하는 거 알잖아!!!!"라고 소리칩니다.
저는 디카프리오가 이 장면을 위해 캐스팅됐다고 확신합니다.ㅋㅋ 그가 25세 이하 백인 모델만 만난다는 건 유명하죠. 그런 현실을 영화에 겹쳐놓으며 은밀한 웃음 포인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PTA는 이런 식으로 낄낄거리는 걸 워낙 좋아해요. 물론 디카프리오는 훌륭한 배우인데, PTA 전작의 주인공과 결이 달라서 더욱 의심이 드네요.
퍼피디아가 가족을 떠나자 영화는 단호하게 징벌을 내립니다.
그녀는 밥이 "자율성"이 없다며 자기는 "혁명"을 하겠다고 나가지만, 어느 하나 이뤄지지 않습니다. 혁명은 실패하고, 퍼피디아는 자유를 빼앗깁니다. 이는 가족과 아이(다음 세대)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죠. 혁명조차 이것을 넘어설 수 없어요. 그래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해체된 가족을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 관한 영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19번 참고)
혁명의 시대가 저물고, 이렇게 1부가 끝이 납니다.
본격적으로 2부가 시작됩니다. 밥을 중심으로요.
이때부터 영화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독해가 필요합니다.
2부 시작과 동시에 윌라가 아빠에게 말합니다.
I'm not a babysitter(난 보모가 아니야).
Grow up(성장해).
굉장히 중요한 대사. 2부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죠.
그리고 밥이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그는 입에 젖병을 물고 있습니다(록조가 말 거는 장면).
영화는 왜 자꾸 밥을 '아기'와 동일시할까요? 그건 밥이 혁명의 실패 이후, 무너져버린 세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마약에 찌들어 과거를 잊고 백지상태가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태초의 인간, 태아 말이죠.
윌라가 사라지고, 밥은 암호를 댈 것을 요구받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라는 주문처럼 말이죠.
이때 등장하는 '땅굴 장면'.
록조가 쳐들어오자 밥은 길고 좁은 땅굴을 기어서, 둥그런 동굴 입구에서 빠져나와요. 이는 엄마의 자궁과 질을 통해 탄생하는 아이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또 밥은 기침도 하고, 눈물범벅에, 거의 기다시피 걷죠? 신생아와 닮은 모습입니다. 이런 '탄생의 이미지'는 2부 내내 반복돼요. PTA는 그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딴 소리지만, 이 씬은 정말 잘 연출되었어요. 밥이 스캐너를 쥐면, 곧바로 문이 폭파되고, 록조 등장. 미묘한 타이밍 때문에 마치 밥이 문을 터뜨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정체성이 'bomber(폭탄기술자)'라는 걸 상기시키죠. 땅굴 탈출까지 모든 숏이 간결하고 리드미컬해서, PTA의 연출 감각이 정점에 올랐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대사가 등장합니다.
전화 너머 남자는 밥에게 묻습니다.
What time is it(지금 몇 시죠)?
밥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사정해도 남자는 봐주지 않습니다. 이건 일견 관료주의적으로 변한 혁명 세력을 풍자하죠.
하지만 동시에 그는 '시대(time)'를 묻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요? 현재에 눈 뜬 사람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죠. 밥의 '시대의식'을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밥이 알 리 없고, 급기야 남자를 협박합니다. 밥은 윌라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여요.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버르장머리" 운운하죠. 이는 이상(민주적인 혁명가)과 현실(폭력을 쓰고 싶음) 사이에 부표하는 혁명 후 세대를 풍자합니다. 밥이 암호를 기억하는 것이 이 영화의 과제가 되겠군요. (이후 17번 참고)
또 밥은 <알제리 전투>를 보며 "그 때야 우리는 진정한 적과 마주할 수 있다"라는 대사를 따라해요. 다음 장면에서는 "암호가 기억이 안 난다"고 울먹이죠. 과거를 잊은 자가 진정한 적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밥은 시간만 모르는 걸까요?
아니요. 공간도 모릅니다. 그는 집결지도, 좌표도 몰라서 헤매죠.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큰 연출적 특징이 드러납니다. 바로 동선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밥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동선을 멀리 서나(롱숏) 위에서(조감) 시원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프레임 안에서 이리저리 뛰다 사라질 뿐입니다. 또한 차로 이동할 때도 카메라는 차 내부만 비춰서 도통 방향을 알기가 어렵죠(위 사진 참고).
이는 밥이 방향 감각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PTA의 전작을 보면 그가 동선을 얼마나 유려하게 잘 잡아내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PTA는 밥의 방향 상실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선을 삭제합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가 드러나는데요.
사실 위의 연출까지만 해도 훌륭하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2부에서 사라진 동선을 3부에서 다시 복원하고, 그것을 영화의 미학과 액션으로 전환한 다음, 결말로 소화해 냅니다. 하 전율...ㅠㅠ 이 이야기는 뒤에서 마저 하겠습니다. (16번 참고)
2부의 주제는 한 마디로 '밥의 방향 감각 다시 찾기'입니다.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는데요, 바로 이민자들이죠. 센세 세르지오(베네시오 델 토로)가 대표적입니다. 밥을 숨겨주고 길도 알려주죠. 밥이 병원에서 탈출할 때 돕는 이들도 유색인종. 밥이 '추파카브라 힐'에 도착하기 직전 양갈래 길에서 도움을 주는 것도 라티노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방향을 잘 아는 걸까요? 영화 안에서 추측해 보자면, 자기의 역사를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시대정신을 갖고 있죠. 그래서 스승이고요.
그렇다면 밥이 왜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는지 이해가 되시죠? 그는 이민자들과 달리 방향 감각이 없고,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합니다.
이 장면에서도 밥은 몸을 둥글게 말고, 태아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져서 엉금엉금 기어가죠. 다시 반복되는 '탄생'의 이미지. 그는 세르지오의 가르침("용기를 가져라")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PTA가 백인 우월주의 집단을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습니다.
1) 먼저, 이들이 성탄절에 찾아온 예수처럼 자기들의 왕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를 완성해 줄 왕이요. 하지만 이 소원은 이상한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18번 참고)
2) 두 번째로 이 이름을 축약하면 Christmas Adventurers Club → CAC 가 되는데요. 글자의 모양이 남근을 상징하도록 하여 남근 숭배주의 집단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PTA의 독특한 개그이고요. PTA는 <팬텀 스레드>에서도 주인공 이름에 성기를 의미하는 단어를 썼죠.
사랑스러운 윌라는 혁명(퍼피디아)과 권력(록조)의 피를 모두 받은 생명. 지금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모두의 신뢰를 먹고 자랐어요. 그걸 보여주는 장면이 아기 윌라가 입에 스캐너를 물고 있는 장면이에요. 스캐너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신뢰의 상징물. 그 숏 이후에 곧바로 성장한 윌라가 등장합니다. 여러 사람이 목숨 걸고 이 아이를 키워낸 것이죠.
그녀 나이 16살에 록조가 찾아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때 록조가 CAC에 입단하며 자기 과오를 지우려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6살의 상징성이 더 중요해요. 아직 성인은 아니지만 성숙한 나이(sweet sixteen). 그녀는 곧 다음 세대로서 세상을 이어받습니다. 이 시기에 맞춰 PTA는 밥에게, 이제 진실을 말해주라고 요청하는 것이죠. 16살은 세대교체의 시기이자, 진실을 밝힐 시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밥의 별명은 게토 팻(Ghetto Pat)이죠. 저는 'PTA'의 순서를 바꿔 팻(Pat)을 지은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PTA는 밥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죠. PTA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나이도 비슷해요(70년생, 74년생). 밥은 약에 취해 사는 것으로 나오는데, PTA 역시 비슷하다고 전해지죠. 이 부분은 추측이니 재미로 봐주세요.
드디어 2부의 마지막.
윌라를 사지에 몰아넣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구출해 준 남자에 대한 의문이 많죠. 그는 누구고, 왜 그랬을까요.
이건 PTA의 전작을 관통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PTA 영화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어요. 바로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이 일어나며 모든 갈등이 스르륵 해소되곤 하거든요.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 장면처럼. PTA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죠. 아마 PTA는 세상이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간이 목숨 걸고 아웅다웅하는 가운데,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 모든 것을 무화한다고.
이번 영화에서는 이 남자가 그 역할을 이어받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남자와의 만남이 마치 '자연과의 조우'처럼 포착되죠. 이 영화에 거의 없는 롱숏입니다.
그가 왜 윌라를 도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에게 운명 같은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다. 이것만이 중요하고,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차 열쇠를 찾아서 도망감).
이 남자는 얼핏 인디언 혈통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게 맞다면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진정한 땅의 주인이 나타나 징벌을 내렸다는 해석도 가능한데, 이건 그냥 추측입니다.
3부의 시작.
드디어 밥은 추파카브라 힐에서 딸을 찾습니다. 이때 감동적인 연출이 펼쳐지죠. 그전까지 꽉 막혔던 시야가 환하게 트이며, 멀리서 윌라의 차가 보여요. 그리고 영화는 처음으로 밥이 어디로 향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밥은 그간의 고생 끝에 딸을 발견하며 자신의 방향감각을 되찾습니다. 그의 방향성은 딸에게 있는 것이죠.
PTA는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2부에서 동선을 삭제하고 시야를 제한해 온 것입니다. (10번 참고)
이 부분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백미. 이 영화가 걸작으로 불려 마땅한 이유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시작했어요(슬슬 부대끼네요 ㅋㅋ). 추파카브라 힐에서 벌어지는 윌라와 남자의 '카체이싱 씬'입니다.
일단 영상미가 너무 좋습니다. 울렁거리는 언덕 지형 →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추격자 → 서스펜스 로 이어지는 흐름은 기가 막히죠.
더 중요한 이유.
이 장면에서 PTA가 처음부터 끌고 온 이야기는 미학을 거쳐, 액션으로 전환됩니다.
2부에서 혁명의 실패 이후 시대를 잊고, 그래서 방향도 모르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밥의 상황은 제한된 시야로 연출되었죠. 3부에서 PTA는 이것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미학적 규칙으로 승인합니다. 그리고 이 씬에 그 규칙을 대입해 '제한된 시야'를 활용한 액션을 만들어내요. 여기까지도 놀라운데, 그 결과 무척이나 아름답고 서스펜스 넘치는 영상이 탄생한 것이죠.
자, 여기서 PTA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인물에게 규칙을 활용하게 한 것이죠. 영리한 윌라는 언덕으로 인한 시야의 제한을 활용해요. 그래서 자기를 죽이러 온 남자를 무찌르는 데 성공합니다. 남자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습니다. 눈을 찡그리다 죽죠. 시대를 보지 못하는 자의 죽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한된 시야'는 아빠 밥의 약점이었지만, 딸 윌라는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 죽음에서 벗어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버지 세대의 약점은 자식 세대의 무기로 새롭게 제련되었군요. 여기에는 PTA가 이 영화를 통해 하려던 말이 압축돼 있어요. 우리의 패배는 다음 세대는 승리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 그런 희망이 있기에 패배를 인정하는 일 역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우울한 고백에 불과하겠죠.
이 장면을 통해 이야기, 거기서 확립된 미학, 거기서 탄생한 액션은 다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자기 영화의 모든 요소를 활용해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 PTA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안에서 거대한 순환을 만들어내고, 여태 쌓은 필모를 훌쩍 넘어서 버립니다.
말이 나오지 않는 연출.
지금 동시대 거장 중 누가 상업영화 시스템 안에서 이런 씬을 연출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주저 없이 별 다섯 개를 주었고, 위대한 영화라고 평하였습니다.
남자를 처치한 윌라에게 밥이 도착합니다. 필요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군요. 이제 밥은 '시간(time)'을 아는 사람이 된 겁니다.
윌라는 암호를 물어요. 이미 아빠가 보이는데, 왜 그러는 것이죠? 이 글을 읽은 독자 분들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건 밥에게 주어지는 최종 질문입니다. 윌라의 입에서 나왔지만, 영화의 질문이에요. 이 여정을 모두 마친 지금, 당신은 과거를 기억해 냈나요? 약에서 깨어 각성했나요?
드디어 밥은 옳은 암호를 말합니다. 일깨워지는 과거. 앞서 '밥이 암호를 기억해 내는 것이 이 영화의 과제'라고 했죠? (9번 참고) 그 과제는 이 장면에 이르러 완수됩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마음도 전해요. 이전에 밥은 아버지같이 보이지 않았죠. 이렇게 아버지 자리로의 귀환도 함께 이뤄집니다.
이쯤에서 다시 록조 이야기로. ㅋㅋ
산타클로스처럼 빨간 옷을 입은 CAC의 남자는 그에게 죽음을 선물하고 떠납니다.
하지만 반전. 록조는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돌아와요. 그가 총에 맞고 차 안에서 팔을 벌린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자세는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를 연상하게 하는데요. 그래서 그의 부활은 마치 타락한 신의 재림처럼 느껴집니다.
기어이 CAC로 되돌아온 록조.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왕의 재림은 이렇게 기이한 형태로 이뤄집니다. (13번 참고) 이는 '너희에게 진정한 신의 은총은 없다'고 조소하는 PTA의 메시지 같습니다.
록조가 가스를 통해 사망하는 과정은 홀로코스트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아기'같이 잠들었을까요.
그는 대화 중 애처럼 "엄마(mommy)"라는 표현을 써요. 그는 죽은 후 보자기에 싸인 아이처럼 실려 나가고, 그를 넣은 화장장은 요람처럼 보입니다.
이는 그가 완전히 퇴행한 상태에서 사망했음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밥과 비교하면 알 수 있어요. 밥은 아기 같은 상태에서 완전한 성장을 이루었죠. 반면, 남성성을 중시하던 록조는 완전히 퇴행해 사라져요. 밥의 승리와 록조의 실패를 대비하는 연출이죠.
카체이싱만큼 중요한 장면. 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드디어 '아버지'로서 마주 앉은 밥은 윌라에게 엄마의 편지를 전해줍니다.
이 편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우리 혁명은 실패했어"라는 말입니다. 과오와 치부를 드러내는 고백이죠.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서 진정한 미래는 시작됩니다.
또한 이 편지를 통해,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해체되었던 가정은 마침내 복원됩니다. (6번 참고) 모든 물음과 과제를 해소하는 마지막 장면. 이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 우리는 여태 달려온 것이겠죠.
요약하겠습니다.
혁명과 권력의 결탁으로 혁명의 시대는 저물고 맙니다. 밥이 대표하는 '혁명 이후 세대'는 좌절 속에 비틀대며 세월을 보내요. 하지만 다음 세대가 성숙해 세상을 물려받을 때가 되자(16살) 이 세계는 밥에게 역사와 진실을 전달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밥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상태. 시대의식도 없죠. 그가 시간(time)과 방향 감각을 되찾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아기처럼 아무것도 못하던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탄생'을 거듭하며 성장합니다.
그는 마침내 정확한 방향으로 가서, 정확한 시간에 윌라 앞에 도착해요. 여기서 그는 암호(과거)를 기억해 내고 아버지로서 복권하죠. 그리고 윌라에게 여태 말하지 않은 진실을 전달해요. 그렇게 과거의 반성 위에서 미래는 새롭게 시작됩니다.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족의 사랑이죠.
매우 정치적인 소재를 활용했지만, 사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주제는 매우 보편적이에요(인종차별, 과거 반성, 가족주의). 그렇다면 PTA는 이런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는 걸까요. 아마도 그는 지금 미국에서 보편적 진리조차 흔들리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이렇게 길게 쓰게 될 줄 몰랐어요.. 연휴를 불태워 버린 글..
재밌게 보셨으면 좋아요, 추천 많이 해주시면 연휴를 날린 자에게 위안이 됩니다 ㅠ
활용할 땐 꼭 이름을 인용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 반전 하나.
사실 이조차 매우 축약한 글입니다. 하핫. 미친놈같나요?
그러니까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에서 얼마든지 질문해 주세요.
그럼 모두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요.
저는 정신 좀 차리고 다음 영화 해설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