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력이 달려 표정관리 실패, '티모시 샬라메'
올해 오스카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은 티모시 샬라메가 만들어주었다.
이번 남우주연상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이클 B. 조던, 티모시 샬라메의 3파전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70, 80, 90년대생으로 각 세대 대표배우의 격돌로도 볼 수 있는 한 판이었다. 결국 상은 <씨너스: 죄인들>에서 1인 2역으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준 조던에게 돌아갔다. 흑인 배우 계보를 이을 스타의 탄생.
수상자 발표 순간 티모시 샬라메를 살펴보자. 'ㅎㅎ..'를 의인화한 것 같은 표정이다. 티모시야, 옆에 레오날도 형아를 봐라.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갈겨버리는 저 기개를. 지금 티모시에게 필요한 건 연기력일까, 노련함일까.
아마도 기력이 아닐까 싶다. 그는 오프닝부터 코난 오브라이언의 개그에 한 방 맞은 상태였던 것. 코난은 얼마 전 있었던 티모시의 말실수("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발레나 오페라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를 비꼬아 "오늘은 아카데미 경비가 삼엄하다. 발레와 오페라 커뮤니티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토스팅했다.
그러자 카메라에 잡혀서 욕도 못하게 된 티모시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까지 끄덕거렸는데, 아무래도 이때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다. 정작 표정관리 해야 할 남우주연상 발표의 순간에 티모시는 힘 없이 박수만 짝짝.. 그러니까 이건 모두 티모시가 아니라 코난의 탓이다. 티모시는 아카데미 이후 "결과에 좀 실망했지만" 괜찮다고 말했다.ㅋㅋㅋ 이렇게 투명한 스타는 오랜만이라 반갑다.
2. 감독상 쪼물쪼물 폴 토마스 앤더슨
지난해 나의 추석 연휴를 날려버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그때 계속 글을 올려가며 이 작품이 걸작이라 핏대를 세웠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 작품상과 감독상이 돌아가니 어쩐지 기쁘다. 이런 것이 작품을 지지하는 재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유독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충분히 수상했으니 괜찮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ㅋㅋㅋ 트로피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라. "그가 오스카상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세요."라는 댓글이 생각난다.
나는 PTA의 <마스터>를 보고 영화비평을 시작했고,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에 대한 글로 등단했다. 언젠가 대만으로 가서 허우 샤오시엔을 무작정 찾아가고 싶었는데, 몇 해 전 그가 알츠하이머로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아직 그 감정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도 PTA라면 언젠가 기회가 있지 않을까? 드디어 인생의 사랑과 만난 PTA, 수상을 축하합니다.
3. "누가 놀렸다는 거야?" 이재 수상소감 반응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작곡가 이재는 단상에 올라 "어린 시절 사람들은 K팝을 좋아하는 나를 놀렸지만, 지금은 모두가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라고 말했다.
재밌는 건 그녀의 소감에 대한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누가 놀렸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서러웠던 경험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발언에 날 선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그녀가 K팝의 소수자성 맥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놀렸다'는 표현은 비주류 문화가 종종 부딪히는 차별적 상황을 직시하게 한다.
이런 반응은 현재 아카데미가 놓인 상황을 날카롭게 반영한다. 올해 아카데미는 아시안과 흑인에게 경계를 넓혔다. 이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골든'에게 주제가상을 주지 않는 시상식이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외연을 넓힌다는 일은 늘 긴장을 유발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불편할 것이다. 그런 불편감은 수면 아래 숨어있다가 적당한 명분이 주어졌을 때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누가 놀렸다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째서 우리를 가해자로 모는가에 대한 불만으로도 볼 수 있다.
과연 아시안과 흑인의 문화를 끌어안은 아카데미는 이런 긴장을 넘어 다양성을 포용하는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혹은 일시적인 바람에 그치고 말 것인가. 오스카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4. "어떻게 아카데미에 갈 것인가?" 묻지 말고 "어떻게 아카데미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라
올해 한국 작품은 아카데미에서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자연스레 질문이 나온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 앞에서 내가 말하고픈 것은 하나다. 아카데미에서 수상하면 좋지만 눈치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를 표방하는 로컬 시상식이다. 할리우드의 정서와 시선에 기반하여 영화를 평가한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런 것이 마땅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로 국제영화제를 지향하는 것처럼.
남의 나라 시상식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남의 기준에 맞춰 작품을 만들게 된다. 이런 태도는 산업의 왜곡을 가져온다. 또 이리저리 눈알 굴리는 작품이 명작인 경우는 드물다.
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아카데미를 능가하는 시상식을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그런 권위와 신뢰를 만들어낼 것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가 수상 불발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이미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이 첫 수상에 감동을 감추지 못하는. 그런 시상식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플랫폼의 시대다. 좋은 시상식을 갖추면 우수한 작품이 몰리고, 그 지역의 영화는 번영한다. 아카데미 시즌에는 한 해 동안 있었던 좋은 작품이 다시 주목받고, 평단과 관객의 비평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는다. 이런 열기 안에서 피어나는 안목은 새로 제작되는 작품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이것이 할리우드에서 여전히 좋은 영화가 나오는 기반이다. 영화의 위기를 말하는 시기. 그러나 할리우드는 여전히 저만치 앞서 있다. 오늘의 아카데미는 그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