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가 1500만을 넘긴 기념으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한 번 시원하게 까보겠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결말에서 아연실색했으나, 솔직히 장항준 영화에서 결말이 구린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영화가 잘 되는 와중에 찬물 뿌리는 것 같아서 코로나 시절 지하철에서 재채기 참는 심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체급이 커져서 내가 좀 때려도 타격도 없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장항준이 이 글을 볼 가능성도 없으니 그냥 시원하게 떠들어 보자.
솔직히 <왕사남>의 결말은 개구리다. 반전을 위해 억지로 짜낸 티가 너무 난다. 조미료도 적당히 들어가야 맛있지, 때려 부으면 니글거려 먹기 힘들다. 아마도 결말 부분에서 감독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미 모두가 아는 단종의 마지막. 어떻게 반전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넣은 설정이, 엄흥도(유해진)가 단종 이홍위(박지훈)를 자기 손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 결말은 앞의 스토리에 비해 너무 극단적이고 무겁다. 영화에서 엄흥도와 이홍위는 사이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기본적으로 백성과 주군의 관계이며, 그 선을 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다. 영화의 색채 역시 코미디에 기반하므로 이런 결말은 자연스럽지 않다. 마지막에 한 방을 날리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좀 무리라고 느꼈는지, 영화는 약간의 설득력을 더하고자 후반부에 하나의 설정을 더한다. 그건 엄흥도와 이홍위 사이의 우정 혹은 사랑이다. 둘은 후반부에 느닷없이 서로 잘생겼다며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기 시작한다. 물론 박지훈이 잘생긴 거야 눈이 있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갑자기?
엄흥도는 처음 이 마을에 이득을 가져오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인물이다. 실제 역사와 무관하게, 영화 속 엄흥도는 충분히 계산적이며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할 정도로 주도면밀하다. 그런데 후반부에 갑자기 단종의 복권을 위해 자기와 아들, 온 마을의 위험을 감수하고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음... 왜? 이홍위에 정 들어서? 소용돌이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껴 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엄흥도는 그런 성향이 더 강한 캐릭터인데, 이런 변화는 설득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의 재미를 위해 캐릭터의 일관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그때그때 필요한 요소를 욱여넣어 발생한 난장이다. 앞에서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중간에는 코미디를 위해, 마지막에는 신파를 위해 엄흥도 캐릭터가 이리저리 소모되는 동안 그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춘 일관성이나 기준 따위 없는 이상한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결말의 연출이다. 위에서 말한 개연성, 일관성... 다 치워놓고 보더라도 마지막의 연출은 구리다. 안간힘을 쓰는 엄흥도, 아니 유해진의 얼굴에 매달리고 있지 않나. 유해진의 연기력이라도 없었으면 이 장면은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게 정말 최선인가.
나도 예능에 나온 인간 장항준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감독으로서의 장항준은 늘 결말이 아쉽다. 영화의 색깔은 뚜렷하다. 그래서 처음과 중간은 재밌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gg 치듯이 결말을 대충 던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끝날 때쯤 매우 킹받음. 물론 찍는 입장에서는 숙고했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전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하지 않고, 재미나 색채에 더 치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어느 댓글에서는 엄흥도의 실화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부분에 방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잘 조명되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나 역시 동의한다.
<왕사남>의 상업적인 성공은 콘텐츠의 힘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이 작품은 나름의 장점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유행은 작품빨이 아니고, 오히려 두쫀쿠와 비교하여 볼 때 더 그럴듯한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이유로 <왕사남>의 내용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 없는 시도다. 나는 영화가 더 이상 작품이 아닌, 기획 상품으로써 소비되기 시작했으며 <왕사남>이 그 시작을 알린다고 본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어느 때보다 감독, 배우의 이미지 관리와 영리한 홍보가 중요해졌는데, 이에 관한 글은 따로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