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관계의 본질에 대한 우화

※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왕과 사는 남자>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요즘. 실시간 예매율에서 <왕사남>을 앞지르며, 조용히 관객 수 백만을 돌파한 영화가 있다.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한국 시장에서 외화가 백만 관객을 모으는 것은 드문 일이다. 마블이나 디즈니, 혹은 <아바타> 같은 대작을 제외하고 여타 작품은 50만을 넘어서면 성공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관객수 54만 명, <서브스턴스>가 56만 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개봉 2주가 안 된 시점에 100만이라니. 궁금해진다. 도대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무엇이 그토록 강력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것일까.


일정 부분은 원작의 힘이다. 인기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영화화가 결정되며 대중의 관심이 컸다. 우주에서 외계인과 소통하는 SF 장르물을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분위기. 또한 라이언 고슬링과 산드라 휠러의 연기도 무척 훌륭하다. 특히, 산드라 휠러는 <토니 에드만>,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 훌륭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자기 세계를 완성해 가는 멋진 배우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른 부분을 짚어보려 한다. 영화의 이면에 버티고 선 채로 우리를 고요히 끌어들이는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하여. 과학 기술, 지구의 운명 등을 다루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사실 '관계'에 관한 영화다. 이 작품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으로 달려간 뒤, 그곳에서 관계의 속성을 되짚는다. 생명과 생명은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는가? 혹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와 로키 사이의 우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아래부터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다.


중학교 과학 교사 '그레이스'는 지구 종말을 막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는 우주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거기서 삶을 마감하길 요구받는다. 그는 처음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결국 따른다. 그렇게 시작한 여정에서 그레이스는 미지의 생명체 '로키'를 만나고, 둘의 임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팀이 된 둘은 각자의 행성을 살릴 미션에 착수한다. 좋은 우정을 쌓으며 소중한 시간을 보낸 둘은 마지막에 서로를 구원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질문. 이들의 특별한 관계는 과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거기에는 '결핍'이 숨어있다. 그레이스에게 미션을 떠넘기며, 에바(산드라 휠러)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책임질 가족도, 연인도 없지 않느냐고. 지구에 혼자 있으나, 우주에 혼자 있으나 달라질 게 없지 않느냐는 잔인한 말이다. 물론 그레이스는 똑똑해서 차출되었다. 그러나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철저히 혼자인 상태로 우주에 방출된 셈이다. 그러니 그의 결핍은 온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


로키의 신세도 비슷하다. 그는 자기 행성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한다.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애달픈 마음. 마치 성격 좋은 강아지처럼 그레이스와 친해지려 드는 로키의 특성은 그의 외로움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결핍은 관계를 탄생시킨다고. 우리는 결핍을 병이나 단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결핍이 나쁜 방식으로 발현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결핍 자체는 (괴롭지만) 나쁘지 않다. 때로 용광로처럼 뜨거운 그 에너지는 우리가 안정된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E.T.> 스틸컷

이 작품과 유사한 영화 중에 <E.T.>가 있다. '외계인과 친구 맺는 영화' 계보의 조상님이다. 재밌는 건 여기에서도 상기한 관계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엘리엇(헨리 토마스)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는 엄마와 산다. 엘리엇은 그리운 아빠에 대한 말을 꺼냈다가 가족들로부터 핀잔받고, 시무룩한 상태에서 잠깐 잠에 든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이 바로 외계 생명체 E.T.다. 이 영화에서도 미지와의 조우는 심리적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적 같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마음 속의 드넓은 여백이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만남 이후, 그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관계가 어떻게 무르익는지 보여준다. 그레이스는 로키를 경계하지만, 그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동작을 따라 하자 경계를 푼다. 어린 아이는 부모를 모방하며 세계를 배운다 하지 않나. 로키의 모방은 그레이스의 세계를 알고 싶다는 친근한 인사다.


다음으로 둘은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 두 외계인의 만남에서 필수적인 과정. 하지만 이건 그레이스와 로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온 외계인이고, 서로 다른 언어로 떠들어댄다. 같은 어휘로 겨우 소통하는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한다 착각하지만, 누군가를 깊이 좋아해 본 사람은 이것이 완연한 착각임을 알고 있다. 우리의 언어는 조금씩 어긋나 있다. 사랑한다. 미워한다. 괜찮다. 아프다. 이 모든 단어에 우리는 각자 다른 의미를 담는다. 이토록 혼란한 세상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외계어를 배우듯 서로의 언어를 조심스레 감지하는 일은,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필수적인 관문이다.


그레이스와 로키 사이에는 늘 얼마간의 거리가 있다. 서로의 공기가 서로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키는 그레이스를 만날 때, 늘 자기만의 작고 귀여운 컨테이너 안에 머문다. 이것 역시 관계의 속성을 은유한다.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에 머무르기 좋아한다. 타인이 상처입히지 못하는 자기만의 안전지대. 그래서 너와 나 사이에는 늘 얼마간의 거리가 존재한다. 이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로키는 자기 컨테이너에서 스스로 나온다. 그레이스를 살리기 위해, 그는 위험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그는 마침내 그레이스를 지키는 데 성공하지만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만다.


이 대목은 로키의 숭고한 희생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코드가 더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접촉'이다. 타자의 세계와 접촉하는 일은 상처를 불러올 정도로 위험하다. 그러므로 각자의 안전지대에서 유지하는 우정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진정으로 상대에게 깊숙이 다가가, 서로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기어이 그 발을 내디딜 것인가?


로키는 그 길을 성큼성큼 걷는다. 목숨을 잃을 위험 마저 감수하며. 그리고 마침내 그레이스에게도 기회가 온다. 로키를 구할 기회. 이 순간 그는 자기 전부를 걸어 그를 구출하러 간다. 나는 이때 그레이스가 좌절하면서도(지구로 돌아갈 기회를 잃어서) 무척 흥분했으리라(로키를 구할 수 있어서) 자신한다. 내가 받은 구원을 되돌려줄 수 있는 기쁨. 이런 경험을 주고받은 관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결국 만남과 관계에 관한 우화라고 볼 수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계산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라고 배운다. 저 사람과 만나는 것이 내게 이로울까? 얼마나 이득이 될까? 혹시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만남의 장소에서조차 서로에게 등급을 매기는 세상에서는 어떤 관계도 계산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시점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관계의 본질을 살포시 일깨운다.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건 이토록 숭고한 일이라고.


나의 못난 점이라 믿었던 결핍은 우리 만남을 위한 초석이 된다. 나는 외롭기에 너를 괴물로 여기지 않고, 고독하기에 너를 본다. 우리 사이에는 같은 몸짓이 오간다. 우리는 서로를 따라간다. 호감을 전하려는 미약한 제스처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의 언어를 새로 익힌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안전지대에서 즐겁게 노닌다. 하지만 커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어느 날에, 나는 너의 세계로 뛰어들 것이다. 나의 세계가 부서지는 것을 감수하며. 위험해질 가능성을 기꺼이 감당하며. 너도 나를 구하러 올 것을 믿기에. 그렇게 우리는 새로 탄생한 행성에서 우리만의 세계를 키워갈 것이다.


이걸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많은 경우에 결핍은 약점이고, 타인은 재앙이다. 부서질 것을 감당하며 누군가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혼자 박살 나서 망하기 십상이다. 따지고 계산하며 안전지대에 머무는 편이 현명할 때가 많다. 나는 나만의 온실 속에 머무는 걸 선호한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어떤 관계의 원형을 비춰 보인다. 이런 만남도 있노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는 살균처리된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감염시킨다. 알고 있다. 이토록 소중한 관계를 평생 한 번이라도 맺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누구나 염원하는 꿈.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판타지는 우주까지 날아가 외계인과 접선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이토록 소중한 관계를 품에 안는다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일 뿐이라 치부하면서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그래, 어쩌면 당신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행운을 보낸다. 스테이트먼트.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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