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민란의 시대>(2014)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2018)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첩보물 수작입니다. 1993년 북한에 잠입했던 첩보 요원 '흑금성'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요란스럽지 않고 뚝심있게 자신만의 분위기를 밀고 나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락성을 놓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 오락성은 거의 모든 장면에 살아있는 긴장감과 첩보물에 충실한 장르성,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등장하는 유머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또한 윤종빈의 작품답게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잘 살아있고요.
윤종빈은 매 작품마다 하나의 테마에 집중할 줄 아는 영리한 감독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반달'이라고 불리는 사내의 역사를, 장편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는 사회로 확장되는 군대의 폭력에 집중하는 식이지요. 때문에 그의 작품은 대체로 테마가 명확하며 집중도가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감독 중에서 '이경미'와 '윤종빈'을 좋아하는데, 윤종빈의 경우 상업 영화의 감독의 이미지가 있지만 저는 작가로서 그의 성장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작>은 그의 연출력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려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최근작 중에는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영화의 포스터를 보자면 좀 식상한 느낌이 들죠. 비슷한 배우들의 중용이 계속되는 한국 영화계의 문제 때문인데요, 하지만 <공작>의 경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등 배우들이 꽤나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시감이 적습니다. 특히 <미생>에서 오과장 역으로 주목받은 이성민 배우의 연기는 굉장합니다. 제게 이성민은 연기는 잘 하지만 다소 익숙한 배우였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얼굴을 하고서 숨 막히는 클로즈업을 감당해냅니다. <공작>에서의 연기가 유독 어려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고행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이 영화에서 유념하며 보면 좋을 포인트는 우선 첩보물의 장르 속에서 재현한 북한의 모습입니다. 평양을 영상으로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 영화에서 담아낸 북한의 모습은 낯선 동시에 익숙하고, 소박한 동시에 웅장한 여러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적 이미지가 <공작>의 큰 성취 중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한 윤종빈은 언제나 상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감독인데요, 이 영화에서는 북한 내부에 자본주의적 개념이 흘러들어가는 모습이 여러 상징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 압축적이고 강렬한 표현도 눈여겨 본다면 즐거우실 것입니다.
영화는 최종 결말에 이르러 약간 톤이 달라지는데, 저는 처음의 톤을 그대로 가져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서는, 대북 첩보물이긴 하지만 이념적 문제보다는 실무자들의 분투와 생존이 주를 이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실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느낌에는 오히려 그런 불편한 부분을 피해가려는 인상이 강하기도 합니다.
<공작>은 8. 8 수요일에 개봉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