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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3. 2019

정신차려, <기생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백을 하자면 <기생>에 실망했다 외치면서도 벌써 세 번을 봤고 앞으로도 더 볼 생각이다. 예전만 못해도 봉준호의 냄새가 밴 신작은 <기생충>밖에 없으니  도리 없다. 그래선지 극장을 찾을 때마다 나는 묘한 희열과 패배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건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봉을 찾을 수 밖에 없구나'하는 패배감과, '평작도 이정도 수준이니 역시 봉을 지지했던 내 안목이 맞았다'는 희열이다.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과거에도 느꼈던 것 같아 기억을 뒤져봤는데 냉전중인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때가 떠올랐다. 실망감에 연락않고 있었지만 오늘 내 느낀 사소한 재미와 예민한 우울을 이해할 사람은 여전히 그 밖에 없음을 자각할 때.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통화가 더없이 즐거움을 부인할 수 없을 때. 나는 그때도 폰을 던지며 패배감과 만족감에 시달렸다. 열받는데 좋다, 뭐 이런 감정이랄까.

허튼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역시나 봉은 봉이라는 얘기를 하고 어서였다. 쉬운 평가는 이미 했으니 생략하고 아래는 <기생충>에 한 상념들이다.


수직으로

<기생충>을 관통하는 것은 '위아래', 그리고 '좌우'로 움직이는 힘이다. 역대 봉준호의 영화를 관통한 것은 주로 '좌우'로 이동하는 힘이었다. (<살인의 추억>의 추격전).


그런 그가 <기생충>에서 수직 방향에 주목하는 것은 영화가 계급 상승의 욕망을 다루기 때문이다. 러나 이건 명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생충>이 또각또각 위로 향하는 발걸음과 우당탕탕 아래로 향하는 볼썽사나운 추락, 그 자체에 매료돼 있다고 느다. 



계단. <기생충>에 수직가능케 하는 것은 계단이다. 기우(최우식)의 초라한 집에도 계단이 있다. 화장실 안 변기로 향하는 작은 계단이다. 부모들과 달리 기우와 기정(박소담)은 유독 이곳을 좋아한다. 그 계단 끝에 만나는 것이 고작 변기이고, 결국 이곳에서 오물이 튄다는 것은 봉준호식 개그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들은 자주 계단을 오른다. 와이파이를 찾으려고 욕실 계단을 오르고, 과외를 하려고 사모(조여정)의 집 오고, 프레쉬한 공기를 맡기 위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른다.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명백하게 이건 계급 상승의 욕구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이 죽는 장소도 계단이다. 저택의 계단을 무수히 오르며 잘 살아보려 했던 문광은 지하실 계단에 떨어져 죽고, 지하실에서 도망치던 기우 계단 입구에서 수석으로 얻어맞는다. 기어코 오르려던 계단에서 해를 입는 것이다.



기정의 특별함

그런 측면에서 못내 애정이 가는 것 기정이다. <기생충> 속에서 유 이상한 순간을 꼽으라면, 그건 기정이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욕실에서 담배를 피는 순간이다. 다른 이들이 생존을 위해(기택) 혹은 물건을 찾기 위해(기우) 집을 분주히 오가는 중에 그녀는 홀로 욕실 계단을 올라 담배를 핀다. 어쩌면 기정은 그 순간, 계단을 열심히 올라봤자 손에 쥐는 것은 고작 담배 한 개비라는 점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상승의 시도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정은 이 영화의 비극을 가장 먼저 예감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가 보이는 태도, 그저 허탈한 웃음을 품고 담배를 입에 무는 그 태도에 마음을 빼앗기는 수 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기정은 기택의 가족 중에서도 이질적인 인물이다. 상승의 욕망을 공유하는 기택-기우 부자와 달리 그녀는 돈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아 보인다. 이 집을 가지면 어느 방을 쓰고싶냐는 질문에도 그녀는 '갖게 되면 생각해 보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렇다고 엄마 충숙처럼 현실에 절어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즐겁게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들도 끊임없이 그녀의 모방 실력(문서 위조 실력, 연기력)을 칭찬한다. 그녀가 밝은 햇살 아래 복숭아를 살 때, 어두운 욕실에서 홀로 담배를 입에 물 때, 그녀의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낭만적인 아우라가 번진다. 그런 측면에서 기정은 이 집의 유일한 배우다. 오직 그녀만이 이 소동극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연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렇게 이질적이고도 초탈한 태도가 그녀를 가장 먼저 무대밖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기정은 가족 중에서 홀로 죽임을 당한다. 그 때에도 기정은 그녀답게 허무하고도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보인다.


활강의 서스펜스

<기생충>에서 높이는 진실의 정도와 관계가 있다. 진실은 위로 갈수록 옅어지고, 아래로 갈수록 짙어진다. 기우와 기정이 가정교사로 분해서 연기를 벌이는 곳은 2층이다. 이곳은 완전한 거짓이 통용되는 공간이다. 반면 1층에서 진실과 거짓 어지로이 오간다. 사모는 가정교사의 정체를 가늠하려 하고, 교사는 속이려고 든다. 문광이 사모에게 진실을 밝히려다가 굴러떨어지는 곳도 1층이다. 이곳에서 종종 비밀이 누설되지만 그것은 대개 진실을 잘못짚었거나(다송이가 귀신을 봤다), 진실과 상관없는 것들이다(기사가 마약을 하는 것 같다). 삑사리의 공간인 셈이다.

반면 지하 거짓이 허락되지 않는 진실의 영역이다. 문광의 비밀과, 기택가족의 정체 모두 지하실에서 까발려다. 진실을 맞이하는 순간 영화는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그런 점에서 '폭우가 오던 밤 기택의 가족이 도망치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이다. 이들이 남궁현자의 집이 자신들의 집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순간, 그 집의 지하실에 사는 근세를 벌레보듯 하는 순간 영화는 그들에게 진실을 들이민다. 이때 우리는 고작 박사장의 지하실에 놀라던 그들이, 집을 향해 아주 길고도 깊은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렇게 박사장의 지하실은 한국사회 전로 확장된다.

아래로 떨어지는 비와, 무수한 계단, 비에 젖은 생쥐같은 일가족과, 이 모두를 담아내는 카메라. 활강의 서스펜스라 할 만한 장면이다.  



이상한 위계

영화 위계는 주로 경제 차이에서 오지만,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이 남녀사이위계다. 그 집의 사모(조여정)는 왜 그리도 눈물이 많은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힌트라고 할 만한 장면이 있다. 기택은 충숙이 자신을 바퀴벌레에 비유했을 때 그녀의 멱살을 잡는다. 다음 순간 충숙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찡그리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눈물고인 웃음으로도 볼 수 있지만, 내게는 터지는 눈물을 감추려는 모션에 가까워 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등장한 문광은 마치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부어있다. 문광이 어디에서 얼굴을 다쳤는지는 따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아내를 때릴 듯한 기택의 행동 뒤에 불길한 징후로 등장할 따름이다. 문광 역시 남편을 안마하거나 보살피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 집의 사모도 남편 앞에서 특이한 행동을 한다. 극존대를 하며 마치 아랫사람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사모는 자주 개를 한 쪽 팔에 안고 나머지 팔로 그 개를 쓰다듬는데, 이 포즈는 박사장이 쇼파에서 아내를 애무할 때의 모습과 겹쳐진다. 박사장과 아내 사이의 위계는 분명해 보인다. 그런 사모가 남편을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자신이 실수(결핵에 걸린 문광을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이때 사모는 '최소 능지처참'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에 드러나는 남녀의 위계를 딱 잘라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폭력과, 눈물, 경직 분위기는 서로 불길하게 얽혀서 여자들의 주위를 떠돈다.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사모가 기택을 2층 사우나실로 불러서 비밀을 지켜달라 할 때, 기택은 슬쩍 사모의 손을 잡는다. 이 장면에는 단순히 '위로'로 치부하기에는 불편한 긴장이 미묘하게 존재한다. 이때 기택은 여자의 비밀을 아는 남자로서의 위계를 슬며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 사모의 반응은 "그런데, 손 씻었냐"는 것이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사모가 기택에게 가지는 경제적 위계에 속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장면에는 두 개의 위계가 충돌하고 있다. 자못 따듯해보이는 악수의 순간에 나는 그들이 서로의 위계를 이용해 기싸움을 벌인다고 느꼈다.



좌우로 선을 넘어

반면 <기생충>에 좌우로 향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것은 주로 누군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 포착된다. 기우가 민혁(박서준)으로부터 과외 제안받을 때 지나가는 버스,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냐"는 기택의 질문이 박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카메라, '바퀴벌레'라는 표현에 옆으로 팔을 뻗어 상을 엎는 기택, 다혜와 키스하는 기택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


또 하나 눈에 띄는 은 애무하는 박사장 옆에 기택 가족이 숨어있는 장면이다. 이때 카메라는 테이블에서 소파 쪽으로, 좌우로 천천히 이동한다. 이 장면에서 기택의 냄새는 선을 넘어 박사장 가족에게 닿고, 박사장 부부는 말 그대로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그 소리는 또 선을 넘어 기택 가족에게 전달된다.


생각해보면 이 순간은 한 가정의 가장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옥같은 순간이다. 자식과 함께 누워 자신에 대한 모욕적 언사(냄새가 난다)와 애무의 소리를 모두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층위로 선을 넘는 순간들이 중첩되어 있다.    


진실의 시간

그리고 그 밤에 진실이 드러나는데 그건 한 마디로 박사장의 지하나 너네가 사는 단칸방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부지런히 기택의 집과 박사장의 지하실을 연결시킨다. 근세(지하실 남자)가 머리로 스위치를 치며 모스부호를 보낼 때 기택의 집 등이 깜빡이고, 문광이 변기에 토를 할 때 기택의 집 변기가 넘친다. 기택이 감전을 당할 뻔하면 근세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다. <기생충>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박사장의 지하실이라는 점을 지시킨다.


동시에 기택의 집에 감돌던 활력도 사라져버린다. 생각하자면 기택의 집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은 위로 난 작은 창문이었다. 오줌누는 아저씨에게 고함을 지를 수 있고, 기세 좋은 친구를 구경할 수 있고, 물장구를 건너볼 수 있는 창문. 그러나 그 창문이 지하실에 있는 박사장의 사진으로 대체되는 순간, 이곳에 예와 같은 활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기정과 함께 검은상자를 열었고, 백주대낮에 지하실 귀신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 시뻘건 진실에 어린 아이는 까무라 기택은 어지럼증을 느낀다.

 

사실 살인이 나던 날 아침부터 기택은 줄곧 몽롱다. 이상한 것은 그가 몽롱할 때 들려오는 잡음이다. 기택이 운전을 할 때 들리던 잡음(zzzzzzzzz)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


이 소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그가 마침내 칼을 휘둘렀을 때다. 카메라는 파리를 비추고, 그 잡음은 파리소리였음이 드러난다. 시체 옆에 꼬이는 파리. 기택은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깨닫는다. 이 순간은 (저택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던) 철없던 기택이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아마도 봉준호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을 꺼내는 순간일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 자각하라는 것. 그것이 <기생충>이 말하려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정신차려

영화는 잔인하게도 자신의 정체를 깨달은 기택 위로 웃음소리를 겹쳐놓는다. 이것은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들 기우가 터뜨리는 실소다. 그는 자기가 그리도 좋아하던 상징(수석)에 얻어맞는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징과 전혀 닮지 않은 실체들이다. 의사같이 안 생긴 의사와, 경찰같이 안 생긴 경찰. 그 결과는? 기우는 정신을 잃은 듯 계속 웃는다. 지금 그의 모습은 취해서 노상방뇨를 하던 남자와도 비슷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의 초반에 우리가 비웃던 그 모습,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던 그의 모습이 우리와 같음을 자각하기 위해 긴 시간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우가 웃음을 멈췄을 때 하는 일은 다시 한 번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가 분명 계획은 필히 실패한다 했건만, 긴 시간이 흐르고도 그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두 시간동안 영화를 충실히 본 우리가 가엾은 에게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다.

정신차려 정신.

그의 계획은 실패할 것이고, 그 남자가 지하실을 단히 올리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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