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생활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law school 창' (9~10월호)에 기고한 글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로스쿨 학생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만 수험생활을 하며 젊은날의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하고싶은 말라 이곳에도 공유합니다.







안녕 친구.
당신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잠시의 여유를 내기에도 빠듯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줘서 고마워요.


얼마전 당신이 로스쿨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흔한 결말은 아니죠. 그래서 오늘은 당신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로스쿨 생활의 성공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을거에요. 그건 저의 몫이 아니니까요. 공부를 잘하는 법이나, 성공한 법조인으로 사는 법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로스쿨에서 가르쳐주지 않을 이야기를. 당신의 오늘 하루에 도움이 되지 못할, 그런 이야기를요.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로스쿨의 생활도 언젠가 끝이 난답니다. 그때가 되면 치열했던 오늘 하루도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지지요. 그때에 다가올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화를 내겠죠.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바쁜 시간에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 생각이 맞아요. 그러니 부디 이 글은 재미 삼아 읽고서 잊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환기. 잠시 창문을 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당신이 훗날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된다면, 그때 이 글을 잠시 떠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죠. 걱정말아요. 빛나는 당신의 인생에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예방주사. 이 단어가 적당하겠네요. 너무 깊은 아픔이 찾아오지 않게 미리 맛보는 적당한 통증 말이죠.


매몰. 로스쿨 시기를 생각하자면 이 단어가 떠오릅니다. 저의 지인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웃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공부에 매몰되지는 않았어도 로스쿨에 매몰돼 있었습니다. 로스쿨을 벗어날 용기도, 그렇다고 최선을 다 할 열의도 없었죠. 매일 하루의 일정에 쫓기며 허덕였고, 조금의 괴로움이나마 회피하려고 도망 다니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싫어하든 좋아하든, 열심히 하든 안하든, 결국 저의 모든 순간은 로스쿨의 자장 안에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든 다른 생각을 하든 결국에는 열람실에 앉아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졸업을 하고 변호사시험 결과를 기다렸죠. 몇 달 뒤 시험 결과가 나왔고 저는 좋은 결과를 받지 못했어요. 다시 몇 번의 시험을 반복하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처음으로 로스쿨의 영향에서 벗어나 현실의 눈으로 저를 되돌아봤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미뤄둔 현실들이 제게 돌진해 온 순간이요.


미뤄둔 현실이라 하면 결혼, 취직에 대한 고민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그렇게 구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 7년 전의 그 시절에 멈춰있는데 세상은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흘러있었죠. 그건 꼬마일 때 보았던 사촌 동생이 장성한 모습을 본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건 ‘후회’라는 단순한 단어에 품을 수 없는 감정이었죠.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잠시 졸았는데 어느덧 영화는 끝나버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관객들이 영화에 감동을 받아 있다면 비슷한 느낌일까요. 저는 무언가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놓쳤는지 몰라 당황했지요. 이제와 생각하니 제가 놓친 것은 사회적 성장이었습니다.


친구, 사회적인 성장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의 성장은 책이 아닌 일상에서 왔습니다. 무협 영화처럼 홀로 은신해 무술을 연마하는 순간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에, 어린 시절 친구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마다 찾아왔지요. 그렇게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낄 때 저는 사회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로스쿨을 다닌 시간 동안 저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죠. 하지만 성장이 없어도 노화는 아왔습니다. 저는 저의 기억이 26살에 멈춰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내게서 33살의 여자를 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당황했죠. 친구, 혹여 당신도 미래의 어느 때에 당황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치열한 시험에서 벗어났을 때, 문득 세상과 다른 속도로 살아왔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리 열심히 무언가를 했지만, 사회적인 경험을 놓치고 말았음을 자각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그 순간도 어느새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놓친 영화를 따라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간이 옵니다. 저는 2배속으로 영화를 돌리며 남들을 따라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서둘러 성장해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들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빨리보기’가 제대로 된 감상일 수 없듯이, 서둘러 따라잡은 시간이 제 인생일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곧 깨달았습니다. 내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보냈음을. 로스쿨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 사실은 무척 소중했음을. 그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시절이었음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당신을 놀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이 보내는 매일의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함이죠. 언젠가 당신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보낸 오늘이 생각보다 눈부신 날이었음을 말이죠. 그러니 부디 최선을 다해 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반복하듯, 기억에서 지우듯 오늘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절을 충실하게 감각하며 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스쿨의 시간을 모두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변호사시험 발표날이 생각나네요. 결과를 확인했던 순간의 막막함 말이죠. 당신에게만 비밀을 말하자면, 저는 시험 결과를 받아들고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밥을 먹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워서 시간을 보내며 내게 닥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지요. 저는 인생 처음으로 맞이한 완연한 실패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해서도, 법조인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른 길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고, 툴툴대면서도 한 길만 걸어온 것이죠. 이제 다른 길을 찾으라는 인생의 명령에 저는 멍청해졌습니다. 그건 무기력도 우울도 아니었습니다. 진공상태. 그때 제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죠.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다시 일어나서 다른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계획을 짜고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의무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죠. 즐겁지 않았지만 아주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죠. 그러다 조금씩 웃음을 찾고 그렇게 저는 지금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성취하거나 어딘가로 올라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그날 그 장소로부터,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누워있던 그 날의 거실로부터 멀어졌다는 뜻이겠지요.


시험 따위 어찌 되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과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면 가식입니다. 다른 길이 마냥 탄탄대로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길은 그곳에 있더군요.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면 성취와 실패도 달리 보이실 것입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생각보다 근사한 성공이 있을 것이고, 분명 성공이라 생각했던 것들 중에 실패로 밝혀지는 순간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순간을 성공과 실패로 가르느라 너무 많은 마음을 쓰지는 마세요. 그 판단에 매몰되지도 마시고요. 그저 맨발로 흙을 밟는 기분으로 한 걸음씩 걸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길이 없다 느껴진다면, 실패가 너무 슬프다고 느껴진다면 오늘 우리의 대화를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실패와 슬픔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잘 해 나가리란 것을 나는 알아요.


밤이 늦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연락하기는 힘이 들겠죠.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친구 수정에게. 이제 로스쿨 생활을 시작하는 26살의 당신에게 이 편지를 부칩니다. 부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고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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