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단어의 의미
'꿈'은 보통 갖고 싶은 직업을 의미한다. 넌 꿈이 뭐니? 내 꿈은 무언가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은, 어떤 직업이면서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고(품어야 하고), 간절하게 바라고, 보석같이 반짝이며, 한없이 소중해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어떤 희생이든 감수할 수 있고, 경건한 동시에 숭고하다는 어감을 품은 것이다.
꿈이라는 환상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저 '꿈'이 싫다. 꿈만큼 실체 없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저런 것을 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환상이다. 그 환상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프로의식'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언급하기도 한 프로의식. 일의 생산성을 위해서는 인간성마저 기꺼이 내던져야 한다는 어감을 품은 단어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꿈'은 한 인간이 직업을 갖기 전까지, '프로의식'은 그가 직업을 가진 후부터 그의 생산성을 최대치까지 쥐어짜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음모론까지 가진 말자. 다만 이 단어들의 사회적 기능은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그걸 무심코 쓰는 우리를 의심하게 한다.
왜 문제일까
저 단어가 싫은 이유는 그것이 논리를 묵살하는 도깨비방망이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 방망이가 활용되는 방식은 주로 두 가지다. 하나는 누군가에게 열심히 살도록 강요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꿈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꿈'은 거리낌 없이 다른 이를 닦달하는 논거가 된다. 넌 꿈이 뭐야? 어떻게 꿈이 없어? 꿈이라면서 이 정도밖에 안 해? 그러나 '모두가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전제는 잘못되었다. 그것은 삶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이런 생각은 많이 공유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언급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꿈을 위한 희생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꿈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한다. 누군가가 무리한 시도를 계속해도 "제 꿈이에요." 한 마디면 수긍하고 희생에 눈 감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물론 주변의 희생도 안타깝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꿈'이 당사자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위하여 스스로의 돈과 시간과 몸을 내어주는 일을 당연시하며, 사회는 그것을 숭고한 것으로 치켜세운다. 그 꿈이 정말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만일 학습된 것이라면?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이들에게 '꿈'이란 것을 가지라고 말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닐까.
'꿈' 권하는 사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없던 농경사회에는 그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무얼 했을까. 비평가의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유사한 활동을 했겠지만 오늘날의 직업과는 다를 것이다. 결국 직업을 얻는 것은, 그 시대가 마련한 제한적인 직종 중에서 하나를 골라잡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체 없는 '꿈'이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그것을 신성시한다. 더욱 큰 문제는 사회가 주도적으로 이런 과정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은 실체 없는 환상이며, 종교에 가깝다. 그리고 환상이 걷히고 난 후에 무너진 현실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때에 사회는 그의 곁에 없다.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하여 도전을 할 수는 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길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꿈'이기 때문에 어떤 희생도 불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을 품어야 된다는 생각에도 나는 부정적이다. 그 단어는 너무 많은 환상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제는 '꿈'이라는 꿈에서 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