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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04. 2017

캐리비안에 나타난 변화, 키덜트에서 키즈로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리뷰


대체 불가능한 해적 판타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실망하고 돌아올 각오를 하고서라도 영화관을 향하게 된다. 그래, 인정하자. 이 시리즈가 선사하는 해적 판타지를 대체할 영화는 아직 없다. 캐리비안 시리즈는 해적에게 관심조차 없던 우리의 머리에 바다의 판타지를 심어놓고서, 매년 여름 우리를 갈증에 시달리게 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거친 남자들. 하나의 나라 같은 하나의 배. 그 배의 지배자 캡틴. 매번 새로이 등장하는 마법 같은 모험.


어찌 보면 유치한 이야기가 성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시리즈가 여태 성인의 에티튜드를 최소한이나마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어조는 기본적으로 성인 드라마의 그것에 가까웠고 영화의 곳곳에 어딘가 복잡 미묘한 어른의 감정이 숨어있었다. 때문에 이 시리즈는 여태 "동화"와 "동화적인 성인 드라마"의 경계에서 아슬하게나마 성인의 쪽에 서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그랬다. 마법사, 기숙학교와 같은 동화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어두운 감정까지 녹여냄으로써 성인 관객까지 아우르는 데 성공하였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다.


아동 관객으로의 타게팅

그런데 이번 캐리비안 시리즈는 "동화적인 이야기"가 아닌 "동화"로 포지션을 바꾼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물들은 평면적이며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도 일차원적이다. 해적들만의 유쾌한 배신이나 검은 거래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거래가 한번 등장하긴 하나 지나치게 단순하여 거래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구석이 있다). 성인의 전유물들은 희미해졌다.

대신 어린 연령대의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은 늘어났다. 별자리 지도라는 설정이나 키스신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구도 등은 어린이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후반부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대사들은 단순하고 느리게 처리된다. 사실 이런 퇴행적인 움직임은 5편 이전부터 나타났으나, 이번 영화에 이르러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캐리비안 시리즈는 이젠 성인 관객이 보기에는 다소 지루하다.

물론 해적 세계를 엿보는 재미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당시에 구성해 둔 해적의 캐릭터나 세계관 자체의 매력이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듯

디즈니 제작에서 알 수 있듯이, 캐리비안 시리즈 자체가 처음부터 아동 관객들을 공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전 시리즈들이 판타지를 즐기고픈 키덜트까지 포괄하는 면모가 보였다면, 이번 시리즈는 이제 키즈로 타겟팅을 분명히 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연령대에서 벗어나 키즈로의 이동. 아마도 이 시리즈의 후속작들도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하고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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