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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09. 2017

김고은에 대하여

그녀는 왜 어떤 작품들에서만 유독 매력적일까

※ 김고은이 열연한 작품들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김고 연기에 대한 견해는 통일적이지 않은 편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가진 어떤 매력은 동시에 그녀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은 김고은에게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도깨비>의 종영으로 이제 그녀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낯선 세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역부터 취약한 배역까지 순서대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담은 것이다



1. 파워풀한 남성의 사랑을 받는 해사한 어린 여성, <은교> <도깨비>


영화 <은교>의 스틸컷


그녀의 데뷔는 강렬했다.

<은교>(2012)의 김고은은 노령의 작가의 눈에 비친 은교를 더없이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뭐랄까, 그것은 잘 계산된 연기의 산물보다는 그녀만을 위한 맞춤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종결된 <도깨비>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빛나는 매력을 보여주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도깨비>는 <은교>의 로맨틱 판타지 버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은교에서 혼자 동경의 눈빛을 보내던 노작가는 수려한 외모의 신으로 탈바꿈하여, 새드엔딩이 대신 해피엔딩을 맞았다.


위 작품들에서 김고은이 맡은 역의 공통점은, 그녀가 강한 남성의 상대역으로서 그들이 퍼붓는 사랑을 이쁘고 해맑게 받는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는 점이다.

<은교>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김고은이 연기하는 은교는 주로 박해일이 연기하는 노년의 작가 이적요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은교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이적요의 눈에 비친 은교는 참 이쁘다.

싱그러운 생명력과 섹슈얼리티를 간직한 여고생 은교.

이는 김고은이 가장 잘 연기하는 동시에 그녀의 싱그러운 외모와도 맞아떨어지며 김고은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이었다.

그녀가 이 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제 <도깨비>의 경우를 보자.

김은숙 작가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재해석하는 것에 강점을 보이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여성이 소위 말하여 아주 잘 나가는 남성을 만났을 때, 그 격차에서 오는 위화감을 이성적 쾌감으로 풀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들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게 재벌이다. 도깨비의 경우 이제 남자 주인공은 재벌을 넘어 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김고은은 여기서 은교와 유사한 해맑은 여고생의 모습을 연기하며 절대자의 사랑을 받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두 역할들의 공통점은 그녀들이 주로 남성의 사랑을 '은혜적으로'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도깨비 김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적요 역시 이미 사회적으로 위상이 대단한 시인이다.

그들은 주로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을 나누기보다 상위의 강력한 지위에서 은혜를 내리듯 사랑을 준다. 또한 동시에 보호자의 모습을 짙게 보이기도 한다.


이때 김고은이 연기하는 역할들의 특징은, 이 거대한 사랑을 매우 해맑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도깨비>의 후반부는 약간 다르기도 하였으나 은교나 지은탁은 주로 밝고 섬세한 태도로 사랑을 받아들이며, 성숙하거나 심각한 어른의 모습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그 역할들이 모두 여고생이라는 어린 나이를 가진다는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어린 나이와 해맑음은 어린아이의 특성이다.

즉, 김고은이 가장 열연할 수 있는 역할은 키다리 아저씨가 퍼붓는 사랑을 아이와 같이 해사하게 웃으며 받아들이는 역할이다.


이때 김고은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그녀의 외모가 주는 싱크로율에서 오는 매력도 상당하다.

또한 김고은이 연기할 때 보이는 그녀만의 '나풀거리는' 느낌 역시 이 역할들과 훌륭하게 조응한다. 

그 느낌이 십분 발휘된 장면은 <도깨비>에서 공유의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김고은이 횡단보도 위를 폴짝거리며 건너는 장면이었다.


김고은은 이런 역할들을 연기할 때 매우 편안해 보인다.

이 역할들은 대체로 남성의 눈에 비친 어린 여성의 모습이므로 다소 수동적이 대상화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특성은 반대로 그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때 아쉬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후설 한다.



2. 강한 남성과 대적하는 말괄량이, <몬스터> <협녀, 칼의 기억>

 

영화 <몬스터>의 스틸컷


그녀가 두 번째로 잘 소화하는 유형의 역할들은 마찬가지로 강한 남성을 상대하는 역이다.

그러나 위의 경우와 반대로 이때 김고은은 이 강한 남성들을 대적하는 위치에 있다.

<몬스터>의 경우 김고은은 잔혹한 살인마 태수(이민기)와 싸우는 복순을 연기했고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의 경우에는 무협 초고수인 유백(이병헌)을 상대한다.


<협녀>에서 홍이(김고은)는 영화 초반에 무협을 익히는 말괄량이지만, 후반부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유백과 처절하게 싸운다.

그리고 <몬스터>의 복순은 위의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이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김고은은 견고한 벽처럼 아주 강한 남성을 상대로 모든 것을 건 혈전을 벌이는 역할에도 잘 어울린다.

이때 그녀의 외모가 가진 선이 가는 느낌 때문에 그녀의 혈투는 더욱 애처로우면서도 치열해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한 김고은의 '나풀거리는 느낌'은 그녀가 액션을 소화할 때도 묻어난다.

그 느낌은 이민기나 이병헌의 묵직한 액션과 부딪치며 매우 재밌는 느낌을 자아낸다.

김고은이 액션에도 소질이 있는 배우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위의 역할들은 모두 어린아이의 느낌이 있다. <몬스터>의 복순은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고, <협녀>의 홍이는 어린 검객이 진정한 협객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김고은은 기본적으로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하지만 김고은이 잘하는 해맑게 사랑받는 연기를 보일 수 없고, 남성들과 대적하는 연기를 해야 하므로 <도깨비>나 <은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매력이 부족한 면도 있다.

또한 김고은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그녀의 발음을 꼽을 수 있는데, 약간은 어눌하면서 부정확한 발음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영화들에서 이 점은 아이들 특유의 귀여운 말투로 보여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한다.



* <치즈 인 더 트랩>의 경우 김고은이 연기한 홍설은 위의 두 카테고리 중 어느 하나에 분류되지 않는다.

다만 이 역할 역시 강한 남성(유정)을 상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 상의 홍설은 유정과 대적하기도 하고 그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성들은 모두 강하지 않은 편이어서 어느 카테고리에 넣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홍설 역 역시 연기력을 십분 발휘하고 이에 대해 논할 만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김고은은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목숨을 건 혈투도,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일방적 사랑을 받는 역할도 아니었기에 그녀의 매력이 십분 드러나지는 않았다.



3. 큰 여성을 상대하는 방황하는 청춘, <차이나타운> <계춘할망>



아마도 김고은 본인도, 영화 제작자들도 그녀가 가진 여리여리한 매력은 아주 강한 역할을 상대할 때 더욱 빛난다는 점을 알았던 것 같다.

그녀는 매우 많은 작품에서 그녀보다 훨씬 강한 상대와 만난다.

그런데 위의 두 영화들의 경우 그 상대는 같은 여성이다.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의 상대역은 김혜수다.

김혜수는 '엄마'라 불리는 강력한 여성을 연기했고, 김고은은 엄마 밑에서 일하는 '일영'역을 맡았다.

<계춘할망>에서 김고은은 계춘할망(윤여정)의 손녀 혜지다.


<차이나타운>의 엄마나 <계춘할망>의 계춘할망은 모두 큰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는 김고은이 속한 조직을 이끄는 파워풀한 존재이고, 계춘할망은 사회적으로 힘이 있지는 않으나 혜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할머니라는 면에서 이 둘은 모두 상위에 있는 여성들이다.

또한 이들은 영화에서 김고은과 유사 모녀 관계를 맺는다.

이 역시 김고은이 어린아이의 느낌을 간직한 배우이며,

그러한 역할을 맡을 때 매력이 돋보인다는 특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또한 김고은은 이 영화들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연기한다.

<차이나타운>에서는 길거리에서 생존하며 상처를 간직한 탕아를, <계춘할망>에서는 탈선한 청소년을 연기한다.

상처받고 방황하는 거친 청춘의 모습은 김고은이 자주 연기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이런 역할을 연기할 때 그녀는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편안하게 보여준다.

다만 이런 배역들마다 다소 비슷한 느낌의 연기가 반복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4. 주도적이며 독립적인 여성 <성난 변호사>


 


이 파트는 아쉽게도 김고은이 가장 약체를 보이는 연기를 다룬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는 남성의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본인에게 시선의 주도권이 있는 독립적인 여성에 관한 연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는 강한 상대의 시선에서 본 여리고 해사한 모습을 연기할 때 가장 편안해 보이며, 이 역할들은 김고은 특유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다만 여기서 그녀가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연기적 단점이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되었고  점은 <성난 변호사>에서 적중하였

다.



김고은은 이 영화에서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진선민 역을 연기하였다.

김고은은 이 영화에서 유독 연기력에 관한 혹평들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여지껏 보여줬던 연기 중 가장 어색한 모습을 보인다. 검사로서 절제된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할 순간에 그녀의 연기는 애매모호한 선에서 멈춰있다.


또한 그녀의 약간은 어눌하면서도 귀여운 말투는 이 영화에서 철저하게 단점으로 작용하였다.

아니, 오히려 김고은 특유의 발음을 커버할 수 없는 배역을 맡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상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편안해 보인 순간은 영화 말미에 이선균과 서로 호감을 보이며 수줍어하던 순간이다.

그때의 진선민은 김고은이 앞서 연기한 배역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아마도 진선민이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상대 변호사에게 '꼬맹이'라는 애칭을 듣는다는 설정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고은의 상대역인 이선균은 김고은이 출연한 여타의 작품에서의 상대역들과 달리, 김고은을 강하게 서포트하는 역할이나 대적하는 역할이 아니라 능글능글하게 상황을 빠져나가는 말쑥한 변호사다.

이 역시 김고은이 상대적으로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그녀가 익숙하게 상대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난 변호사>만 보고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김고은은 <치즈 인 더 트랩>이나 <도깨비>에서도 제 나이의 커리어우먼을 연기할 때는 평범한 연기를 선보였고 그다지 매력이 다. 이것이 그녀가 <도깨비>에서 여고생일 때 보다 29살의 감독을 연기할 때 대중적인 호응이 약했던 이유 중 하나다.



5. 배우 김고은, 그리고 그녀의 연기




김고은은 매우 매력 있는 동시에 개성이 뚜렷한 배우다.

배우로서 그녀의 매력 중 가장 큰 요소는 그녀의 마스크다. 김고은은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년배의 여자 배우들 중 흔치 않게 깨끗하고 여린 선을 지니고 있다. 여담이지만 그녀의 싱긋 웃는 입매는 김고은의 외적인 매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본다.


김고은의 장점은 그녀만의 천진난만함에 있다.

여기서 그녀가 강점을 보이는 <은교>, <도깨비>의 역할들이 파생되는 것이다.

또한 여린 몸으로 나풀거리며 필사적인 싸움을 보일 때도 그녀는 매력적이다.

방황하는 청춘을 연기할 때도 김고은은 비교적 편안한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위의 강점들이 모두 어린아이의 모습을 전제한다는 것은 어떠한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것은 분명히 세월이 흐르며 언젠가 한계로서 다가올 다.

더욱이 그녀는 올해 27살의 배우로서 이제 소녀와 작별하고 훨씬 성숙한 여성을 연기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되 그녀 특유의 아이 같은 해사함을 간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아이의 모습을 주요한 특성으로 전제하여 여기에 변화를 주는 식의 배역들을 맡는 것은 <도깨비>가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이미 그녀가 선보이는 해맑은 모습은 충분히 많이 소비되었고, 지금은 대중적인 포화지점에 와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매력은 귀하고 그녀의 연기도 더 넓은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에 김고은을 오래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김고은에게 <도깨비>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부디 그녀가 우울한 배역, 절제된 배역, 주도적이고 파워풀한 배역 등 생소한 역할들을 마구 맡아서 그녀의 연기 세계를 사정없이 깨주기를 바란다.

그 선택은 예전보다 덜한 호응을 가져올지라도 그녀를 오랫동안 스크린에 붙들어 놓을 것이다.

생소한 얼굴로 다시 우리를 찾아올 그녀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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