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6년 씨네21의 제21회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는데, 가장 처음 공모에 글을 보내본 것은 그보다 1년 전인 2015년의 일이었다. 그해 초 비평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해 그해 여름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에 용감하게 글을 적어 보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벌개질 수준이었고, 그저 내가 좋은대로 쓴 글들이었다.
당시 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에 관한 감독론과 <나를 찾아줘>(2014)에 관한 작품론을 써서 냈다. 나는 당시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글을 썼고, 퇴고를 하다하다 나중에는 더 이상 손을 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보낸 글은 변명의 여지 없이,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보낸 글이 무참히 떨어지고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때 (지금 보면 놀랍게도) 나는 충격을 먹었다. 언제나 글에 관한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충격의 시간이 지나고 다른 글들을 읽으며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등단한 글과 내 글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남들의 글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을 가리던 막연한 생각, '내가 진짜 각 잡고 쓰면 저거보단 잘쓰겠지' 하는 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글들의 장점들이 눈에 부드럽게 들어왔다. 실패의 경험이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졌던 셈이다.
다음 해에 전년의 실수를 고려하며 다시 글을 썼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운 좋게 등단을 할 수 있었다. 전년의 실패가 내게는 호재가 되었다. 지나고보면 그때 내가 느낀 패배감은 최선을 다해 더 이상 둘러댈 변명이 없었기 때문에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 온전한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마음먹고 쓰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젖어있었을 것이고 그 단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처참한 실패와 새로운 시작은 남김 없이 최선을 다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글을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컨디션이 안좋았어, 시간이 없었어. 이런 핑계를 댈 수 없고 어떤 변명으로도 도망칠 수 없는 최선의 글을. 그 과정이 벌거벗는 것처럼 부끄럽고 괴롭게 느껴지겠지만, 그 글을 마주하고 나의 상태를 인정할 때에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문이 열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