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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01. 2020

왜 막상 쓰고나면 밋밋해 보일까

신기하게도 머릿 속의 많은 글감들은 막상 그것을 글로 풀어낸 순간 밋밋해진다. 분명 혼자 생각했을 때는 대박이었는데 막상 활자로 써서 읽어보니 어디선가 본 듯도 하고, 뻔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나홀로 음미했던 글감의 맛과, 그것을 종이 위에 현출해서 눈으로 읽은 맛 사이에는 늘 괴리가 발생한다. 생각보다 맛이 없고 밍밍하다. 이런 괴리는 왜 발생하는 걸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마치 서툰 조각사처럼, 아이디어의 예리한 날을 글로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꾸준히 쓰며 처음 생각과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정석적인 해결법일 것이다. 

또 머리속 생각을 일단 말로 표현해보고, 이것을 글로 다시 변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각에서 바로 '글'로 건너가는 것보다 사이에 '말'을 거치는 것이 보다 부드러운 전환을 돕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을 글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좀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종이에 쓴 글이 머릿속 생각보다 별로인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착각' 때문이다. 우리는 늘 머릿속 아이디어를 조금씩 과대평가하고는 한다. 구상 단계에서 기똥차고 흥미진진했던 그 아이디어들은 현실화 되는 순간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받고 샅샅이 관찰당한다. 우리는 머리속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툴툴대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별 것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나의 말을 곡해해서 머릿속 아이디어를 과소평가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나는 생각과 결과 사이의 격차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며, 이 격차는 무수한 현출 과정을 거치며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작업은 내 몸 안의 아이디어를 세상으로 내보내서 이것을 객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면 정말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변모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과정은 집안에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던 어린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 객관적 평가를 받는 과정과도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그 서럽고도 짜릿한 과정을 감내하는 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성장이라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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