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마로나'의 삶을 가만히 보고있자면, 특별히 개를 키우지 않더라도 <환상의 마로나>(2020)가 황홀한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판타지에 가까운 연출 때문이 아니라 개의 삶을 호들갑스럽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로나가 세 인간들과 각각 보낸 시간들은 인생의 유년기/청년기/중년기로도 비유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영화를 사랑의 단계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리뷰도 비평도 아니고, 제멋대로 연상한 생각과 느낌들을 고백하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따뜻한 모유와 포근한 품. 모든 걱정을 잊게하는 어미개의 축축한 혀. 마로나(이 개에게 여러 이름이 있지만 편의상 '마로나'로 통일한다)에게 어미견 '시시'가 선사한 것은 한 마디로 작고도 확실한 행복이다. 그에게 유년기의 기억은 주로 촉감으로 감각되는 몽글몽글한 행복으로 각인된다.
그리고 어미개의 품을 떠난 마로나는 그의 첫번째 인간, '마놀'을 만난다. 마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유독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둘의 눈동자는 마주 본 서로의 모습으로 일렁이고, 마놀의 손길에 마로나의 몸은 녹아내린다. 마놀의 몸은 건물보다 큰 크기로 부풀기도 하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기도 한다. 이런 점은 곡예사라는 마놀의 직업과 연관이 있겠지만, 전지전능한 '신'의 특성과도 유사하게 보여, 마놀이 그 만큼이나 크고 절대적인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마로나는 "뭘 가져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많은 걸 갖게 되자 다 망칠까 봐 겁이 났다"고 고백한다. "나와 살면 너도 가난해진다"는 마놀의 말에 마로나는 "가난요? 농담이죠? 이 정도만 있어도 난 제일가는 부자 개에요."라고 답한다. 이 따뜻하고 겸손한 말들은 사랑에 푹 빠진 이가 느끼는 흥분과 상대에 대해 갖게 되는 선망을 보여준다. 마로나가 "마놀과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했다"고 말할 때 그의 작은 몸은 천장으로 두둥실 떠올라서 밤하늘의 이름 모를 행성들을 지나 우주 끝까지 날아간다. 이 이미지는 첫 사랑, 혹은 사랑의 첫 순간에 다가오는 희열을 환상적으로 포착해낸다.
마로나는 마놀을 통해 이별의 전조를 배운다. 그는 '우리의 작은 집에는 불행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며 한 가지를 배웠다고 말한다. '매일 마지막인 것처럼 내 인간의 얼굴을 핥을 것. 언젠가 정말 마지막이 될 것이므로.' 그리고 마로나는 마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를 떠난다. 상대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별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어쩐지 아직 삶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젊은 연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날 밤 마로나는 그가 날아갔던 깊고 심원한 우주에서 길바닥으로 위로 다시 떨어진다.
그리고 두 번째 인간, '이스트반'이 마로나에게 온다. 마로나는 "둘 다 첫 눈에 반했다고 하면 좋겠지만 아니"라며 "기운을 차렸을 때에야 최고로 아름다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마놀 다음이지만."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여전히 가슴에 남은 진한 첫사랑의 잔상, 또 그런 자신의 상태에 대한 씁쓸함이 느껴진다.
마놀이 낭만적이고 다정한 인간이었다면, 이스트반은 크고 단단한 외형에 강인한 생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긴 잠에 빠져있던 마로나를 깨우며 그의 허기를 채워준다. 그리고 마로나의 주변에 있는 거대한 폐품들을 손바닥으로 쓱쓱 접어, 콩알 만한 보석으로 만들어 손톱으로 튕겨내 버린다. 이스트반은 마로나가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고갈된 순간에 다가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가 마로나에게 혼자인 게 무섭지 않냐며 "난 알아. 나도 외로운 건 싫거든" 하고 말하자, 그들의 주변은 이스트반이 튕겨낸 보석들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이 낭만적인 장면은 마로나에게 생긴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인간과 단 둘이라는 사실에 우주로 날아오르던 어린 강아지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이에게 마음을 여는 성숙한 개로 변모했다.
그리고 마로나는 활력을 되찾는다. 다시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쓰다듬는 손길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불안'도 알게된다. 마로나는 이스트반이 떠나는 밤이면 무척 불안해하는데, 이 순간은 주변의 건물이 그를 향해 엄습하는 폐소공포증과 같이 그려진다. 이스트반은 마놀과 달리 건물보다 커지지 않으며, 그를 우주까지 날아오르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로나는 "자는 동안 지켜줄 인간을 갖는 것이 개의 행복"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는 약간의 불안과 외로움, 이전보다 커진 책임감과 현실감을 배우는 중이다.
마로나는 마지막으로 작은 인간, '솔랑주'를 만난다. 이 꼬마는 호기심 많은 눈으로 다가오며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말하지만 마로나는 "난 이런 일에 익숙하다"고 뇌까린다. 그러나 "누구도 가져 본 적 없는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하자 마로나는 "이 작은 인간 멋지네! 그녀가 좋았다"고 고백한다. 익숙해진 패턴 속에서도 다시 한 번 특별한 순간을 기대하는 사랑의 속성을 떠올린다면 과도한 감상일까.
재밌는 것은 마로나가 만난 인간들의 형상이 점점 작아진다는 점이다. 건물보다도 높게 부풀던 마놀에서, 크고 건장했던 이스트반, 작은 꼬마인 솔랑주까지. 이것은 서사적 우연으로도 볼 수 있지만, 마로나가 느끼는 인간의 존재감의 변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인간은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운 곡예사에서, 생명력 넘치고 유쾌한 장성으로, 되려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귀여운 철부지 꼬마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하는 상대가 갖는 다양한 면모와도 일치한다.
기대와 다르게 솔랑주와의 생활은 별다를 게 없다. 때가 되면 산책을 가고, 바구니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새로 생긴 이름에도 마로나는 "뼈다귀보다 이름을 던져주는 것이 더 쉽다"고 피곤한 듯 말한다. 이전과 같은 희열은 없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산책 속에서 마로나는 "완벽한 순간이 있다면 이것도 그 중 하나"라며 "이런 순간을 위해서라면 개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우리 삶을 가치 있게 탈바꿈하는 완벽한 순간들. 솔랑주에게서 마로나는 '일상'을 선물받는다. 예상가능하며 안정되고 편안한 행복말이다.
마로나의 이야기를 보며, 어쩐지 첫사랑과 끝사랑의 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처음과 끝, 새로움과 익숙함을 결정짓는 것은 나이나 경험이 아니라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기대는 지독한 상처의 위험을 동반한다. 첫사랑을 결정하는 것은 순수하게 기대하며, 또 기대한 만큼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된 마음이다. 자신을 해할지 모를 경험에도 마음의 부드러운 속살을 내어놓는 대책없이 용감한 태도가 처음 사랑하는 인간들의 특징이다. 우리는 얼마나 상처받을지 미처 몰라서, 혹은 알고서도 좋아서 이런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반대로 기대가 체념으로, 새살이 굳은살로 바뀌어 스스로를 상처로부터 지킬 수 있는 순간마다 우리의 사랑은 끝을 향해 성숙하는 것일 게다.
솔랑주가 탄 버스를 쫓아서 마로나가 달려가는 시간 동안, 그가 만났던 인간들과 그가 있었던 장소들이 스쳐지나간다. 도로 위로 무수한 버스들이 교차하듯이 무수한 인연과 풍경들이 이곳 위를 맴돈다. 곧이어 우연히 생긴 차사고로 마로나는 세상을 떠난다. 그의 부모들이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 그가 세상에 찾아온 것처럼.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에 이르러 마로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속삭인다. 이 두 번의 반복된 속삭임은 내게 '세상에는 수많은 마로나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다시 한 번, 밤하늘의 행성처럼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누군가를 설레게 하고 고통을 주며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갈 것이다. 아아 <환상의 마로나>는 올 해 만난 가장 멋진 사랑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