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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12. 2021

36살에 구정을 맞는다는 것

같은 새해이지만 1월 1일, 신정은 너무도 환희가 가득해서 어딘가 부담스러운 구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사이로 전해지는 설렘에 들뜨기도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이뤄둔 것이 없다는 자각과 함께 초조함도 몰려온다. 온 세상이 지난해를 말끔히 보내고, 두 팔 가득 벌려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다. 그 신성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티 내지 않았지만, 사실 1월 1일에 지난해를 말끔히 보낸 적 없다. 모든 감정이 약간 느린 나는 늘 새해가 성큼 다가온 신정에도 지난해의 기억들과 부둥켜안고서 작별인사를 하느라 홀로 연말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구정은 조금 다르지. 들떴던 세상도 제법 차분해지고, 새로 시작된 일 년에 조금은 적응한 시기. 봄이라기에 차갑지만 겨울이라기에 따듯한 날씨. 신정의 뜨거운 열기가 한 김 식어 따스한 온기로 지속되는 때, 다시 한번 새해가 시작됨을 자각하며 새로 큰 숨을 쉰다. 구정만의 차갑고도 포근하며 여유로운 공기가 좋다.


30대 중반이 되어 구정을 맞는 순간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오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딱히 기대감을 갖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나이. 하지만 그 나이가 되어 구정을 맞으니 올해 새로 이룰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살짝 움직인다.


20대, 그리고 얼마 전까지 내게 새해는 신정이었다. 나는 1월 1일마다 올해 새로 성취할 것들을 다짐하며 야심만만하게 이정표를 꽂고는 했다. 그리고 36살에 맞이하는 새해는 구정에 가까을 느낀다. 지난해에 대한 후회와 새해에 대한 기대를 반복하기도 약간은 지겨워진 나이. 20대에 이루지 못한 것들의 리스트를 새삼 쳐다보 마음이 따끔해서, 슬쩍 떠올렸다가 이내 기억 한편에 처박아두게 다. 하지만 지금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닐지도,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니 마음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벅차오르는 날. 구정의 차갑고도 따스한 설렘을 닮은 나의 36살 새로 이어질 날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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