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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14. 2021

<시지프스>에서 특이하게 느껴지는 점


조승우, 박신혜 주연의 <시지프스>는 SF 미스터리물이다. 서사를 완성하는 사건들 사이의 개연성이 중요한 장르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시지프스>의 서사는 그닥 촘촘하지 못한 편이다. 그래도 (이런 칭찬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흔치 않게 SF 미스테리 장르를 야심차게 시도했고, 적당히 재미있다고 느껴서 잘보고있다.


다만 <시지프스>를 볼 때마다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점이 하나 있다. 이 드라마는 유독 말의 속도감이 떨어진다. 대사의 속도가 느리고, 대사 사이의 간극이 미묘하게 넓다.

가령 '너 누구야?' '글쎄 누굴까?' 같은 대사를 다고 가정하면,

"너.   누구야   ?"

"글.  누굴까  ?"

정도의 공백들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내 감각이 이상한가 싶어 <시지프스>를 보다 끄고 다른 드라마를 틀어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같다.

그리고 대사와 대사 사이의 간극, 배우의 대사가 끝나고 다른 배우의 리액션 장면으로 넘어갈 때의 템포도 반절 정도씩 느리다.


아마도 시청자에게 친절해지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장르가 SF인 만큼 생소할 수 있는 세계관이나 개념을 수월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시지프스>가 떡밥을 뿌리고, 의미심장한 장면을 연출할 때에도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건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야. 중요한 건.." 이 대사는 좀 많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 대사 후에 한태슬(조승우) 물끄럼히 바라보는 순간의 정적은 다소 길어서, 대화 중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을 때의 민망함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볼 때 <시지프스>의 주요 시청자 층은 이미 미드의 빠른 속도에 익숙한 이들일 확률이 높다. 시청자들이 대사를 놓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다. 나의 지인 중 하나는 "미드의 빠른 속도감을 쫓아가며, 놓친 부분은 다시 돌려보는 것이 미드의 재미"라고 말했는데  동감하는 부분이다. 또 분량을 늘리기 위함이라면, 회수를 다소 줄이더라도 전체적인 속도감을 높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미스터리 장르를 접할 때 관객은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런 방황과 탐색이야말로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다. 우리는 기꺼이 미스터리 안에서 미아가 되기를 즐긴다. 그러나 미스터리물이 관객의 이탈을 두려워해서 지나치게 친절해지면, 그 신비한 아우라를 잃게 되고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게 된다. 전개가 예측된다면 미스터리물이 아니다. <시지프스>는 친절함에 대한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더 신나게 달려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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